"서울 전세살이 포기합니다"…3040 세입자들의 한탄

입력 2020-10-21 09:16   수정 2020-10-21 15:22

“2년 전 전세보증금으로는 상급지는 당연하고 같은 지역 내에서 이사하는 것도 꿈도 못 꿔요. 서울 인근에선 마땅히 이사할 곳을 찾지 못해 경기도 쪽에서 전세를 찾고 있습니다.”

서울 송파구에 전세를 살고 있는 세입자 허모 씨(34)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내년 초 전세 아파트 계약 만료일에 앞서 하남에서 전셋집을 알아볼 계획이다. 집주인이 실거주 의사를 밝혀왔기 때문이다. 허씨의 직장은 서울 잠실에 있지만 현재 전셋집인 송파구 아파트의 전세보증금(5억원 중반대) 내에서 집을 구하려면 외곽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허씨가 현재 사는 집의 전세 호가는 최근 8억원대까지 오른데다 그마저도 매물이 거의 없다.

그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매물이 하나도 없고, 있다 해도 전세보증금이 2년 사이에 너무 많이 올라 경기도까지 눈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그나마 허씨가 알아본 경기도 하남시도 전셋값이 만만치 않다. 전용 84㎡의 전셋값이 6억원을 훌쩍 넘으면서 보증금을 받아서 더 보태서 이사를 가야할 형편이다.

정부가 최근 임차인들의 ‘상급지 이동’ 때문에 전세가격이 불안해졌다고 주장을 한 데 대해 시장 현황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선 전세매물이 잠기고 가격이 폭등하고 있어서다. 오히려 울며 겨자먹기로 상급지에서 하급지로 이동하는 세입자들이 늘었다.
"임차인들이 상급지로 이동하고 있다고?…글쎄"
국토교통부는 최근 전세난의 원인을 설명한 해명자료를 내고 “금리 인하가 임차인들의 상급지 이동을 부추겨 전세가격이 불안해졌다”고 주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금리 인하가 이뤄진 게 전세난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저금리로 이자비용 부담이 줄어든 임차인이 수도권보다는 서울, 다세대·연립보다는 아파트 등을 선호하게 됐고 이것이 전셋값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논리를 내세운 것이다.

국토부는 대출금리가 4%→2%로 하락하는 경우의 예를 들면서 설명했다. 이 경우 월세 임차인의 실부담 변동은 없지만, 전세 임차인은 월부담이 50만원으로 감소한다는 것. 전세 임차인은 기존 월 부담액(100만원)으로 6억원의 전세대출 이자를 부담할 수 있다보니 상급지나 상급주거유형으로 이동한다는 논리다. 다시 말해 저금리로 대출 부담이 줄어 전셋값이 놓은 곳으로 이동하게 되고, 이는 전셋값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정부의 주장처럼 임차인들은 저금리 덕을 보며 상급지 이동을 하고 있을까. 실제 시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딱 잘라 말했다. 전세 품귀 현상에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이야기가 나올 지경이기 때문이다.

전체 4424가구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전세 매물은 단 3개뿐이다. 전세 거래가 빈번한 이 단지는 6월 중순만 해도 전세 매물이 360개가 넘었다. 송파구 잠실동 ‘레이크팰리스’(2678가구) 전세 매물은 단 1개, 동대문구 전농동 ‘전농SK’(1830가구)는 2개만 남아 있다.

서울 가양동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처럼 전세 매물 구하려면 줄을 서고 제비뽑기를 하는 일도 허다한 상태다. 심지어 새 임대차보호법을 추진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마저 ‘전세난민’으로 전락하는 처지에 놓였다.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가 씨가 마르니 시세보다 훨씬 비싼 전셋집도 몇시간 사이에 거래되곤 한다”며 “전셋값이 워낙 오르다 보니 2년 전 전세를 살던 임차인들 대부분은 이 지역에 살지 못하고 가격이 좀 더 저렴한 지역으로 밀려나갔다”고 전했다.
3040 서울 전세살이 포기…경기로 밀려나는 중
자금력이 적은 30~40대 젊은 층들은 외곽으로 밀려가다가 서울 거주를 포기하고 경기도나 인천으로 이동하고 있는 경우가 늘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서울의 3.3㎡당 평균 전셋값은 1448만원이었지만, 올해 8월 기준으로는 3.3㎡당 1594만원으로 크게 올랐다. 이는 지난해 경기도 평균 분양가인 3.3㎡당 1462만원을 훌쩍 넘어선 수준이다.

통계청 인구 통계를 분석해보면 지난해 경기도 전체 전입인구 13만4666명 중 서울에서 전입한 인구가 9만1954명으로 68%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동한 인구가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매매 수요자는 물론 전세를 찾는 이들도 경기도로 밀려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KB부동산 리브온의 주간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경기 아파트의 전세수급지수는 6월 29일 169.6에서 195.7(이달 5일 기준)로 치솟았다. 이는 공인중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하는 심리지수(0~200)로, 100보다 크면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뜻이다.

전세를 찾아 인천이나 경기도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들 지역 전세값도 연일 급증세다. 경기 전역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덕풍동 '하남풍산아이파크 1단지' 전용 84㎡는 지난달 6억5000만원에 전세 계약됐다. 역대 가장 비싼 전세가격이다. 망월동 '미사강변하우스디더레이크' 전용 84㎡ 전세도 지난달 6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8월(3억8000만원)에 비해 두 배 가까이로 뛰었다. 덕풍동 H공인 관계자는 “전용면적 84㎡ 아파트 호가가 최근 7억원까지 부르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남양주에서도 호평동 '호평마을신명스카이뷰하트' 전용 84m²의 전세 호가가 3억8500만원이다. 올해 8월 3억3000만∼4억원에 매매된 것을 고려하면 전셋값이 집값과 비슷하거나 추월한 셈이다.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래미안휴레스트' 전용 59㎡도 지난 5월 3억원대에 처음 진입한 뒤 지난달에는 3억9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지면서 4억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
3기 신도시 방안 나오니 전세 물량 '더' 줄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전세 난민들의 하급지 이동이 줄을 이으면서 경기도 전세 시장이 요동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세 난민이 몰려오는 만큼 전셋값이 오른다는 전망이다. 더군다나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올해(4만8719가구)의 반토막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주택임대차법까지 시행되면서 가뜩이나 입주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존 전세에 눌러살게 되면서 서울에서 전세로 나오는 물건은 감소할 수 밖에 없는 상태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내년엔 서울 입주 예정 물량이 2만7000가구로 올해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고, 새 아파트를 원하는 수요도 많아 경기도로 이동하는 인구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홍남기 부총리는 앞서 ‘제8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새로 전세를 구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21일도 "전세 시장과 관련해 실수요자와 서민 보호를 위한 안정화 노력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해결책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정부는 3기 신도시의 물량이 공급되면 임대차 시장도 더 안정화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펼치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전망은 밝지 않다. 이 방안은 당장 전세 물량을 늘리지 못하며 오히려 청약 대기수요만 증가시키면서 엇박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3기 신도시 사전청약 일정이 공개된 이후 경기 남양주, 하남, 고양 등 대상 지역에서는 전세 매물이 줄었다. 부동산 정보 애플리케이션 아실에 따르면 고양시 덕양구의 아파트 전세 매물은 지난 20일 기준 585건으로 3기 신도시 사전청약 일정 공개일인 지난 8일(676건)보다 13.4%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하남의 아파트 전세 매물은 460건에서 429건으로 6.7%, 남양주는 669건에서 620건으로 7.3% 줄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임대차법 시행으로 계약연장 사례가 많아지면서 유통물량이 줄어들었지만, 3기 신도시 청약 등으로 전세 수요는 늘었다”며 “내년에는 신축 아파트 입주물량도 올해보다 줄기 때문에 생각보다 전세난이 길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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