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지금은 국정감사 중

입력 2020-10-20 17:27   수정 2020-10-21 00:12

여의도만의 특별한 가을이 왔다. 300명의 국회의원, 2700명의 보좌진, 이들을 돕는 국회사무처와 지원 기관, 그리고 대한민국 전 부처 및 공공기관 공무원들이 벌이는 한 달간의 레이스. 국정감사 시즌이 온 것이다. 때로는 보여주기식 ‘쇼’나 국민의 삶과 어긋난 정쟁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있지만, 행정부를 감시할 의무가 있는 국회는 국감을 통해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올바른 곳에 잘 썼는지, 정책의 방향은 옳았는지를 현미경으로 낱낱이 들여다보며 뜨거운 낮과 밤을 보낸다. 그 한 달을 위해 수많은 공무원이 수개월 동안, 심지어 추석 연휴도 반납하면서 밤을 지새운다.

국감장 안에는 치열한 정책 비판과 대안 제시도 있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눈물짓게 하는 감동의 순간도 있다. 무명에서 소위 ‘국감 스타’로 하루아침에 이름을 날리는 국회의원이 탄생하기도 하고, 회의장에 각종 희귀 동물이 등장하거나 특정 복장을 직접 착용하고 나오기도 한다. 몇 년 전에는 한 보좌관이 각종 ‘셀프 성형기구’를 눈이며 턱이며 온 얼굴에 착용하고 나왔다가 본의 아니게 스타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간혹 어디에도 기댈 데 없어 국감장까지 찾아온 국민의 애절한 사연은 국감장을 눈물바다로 만들곤 한다.

아침부터 시작해서 밤 12시를 넘기는 일도 흔하지만 실제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 7분, 3분, 이렇게 총 15분이다. 치열한 안건일 경우 추가 3분 질의가 가능한데, 그렇다고 해도 온종일 진행되는 국감 중에 발언 시간은 채 20분이 안 된다. 요새 말로 “헐!”이다. 이 짧은 시간 안에 몇 달 동안 보좌진과 동고동락하며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니! 초고난도의 초선 도전기가 아닐 수 없다.

내 생애 첫 국감 질의는 국무조정실이었고, 밤 12시가 가까워 일정을 마쳤다. 기진맥진해 의원실로 복귀한 후에야 알았다. 이 모든 것이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을. 국회의원의 질의 내용과 태도를 평가해서 매일 공개하는 언론도 있고, 각종 시민단체와 비정부기구(NGO)도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베스트(최고)’와 ‘워스트(최악)’를 뽑는다고 한다. 심지어 각 정당도 점수를 매겨 의정활동 평가에 반영한다고 하니, 정신이 번쩍! 고3 수험생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올해는 국감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언제나 회의실 안은 수십 명의 국회의원과 피감기관 증인, 보좌진, 언론인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고 회의실 앞 복도마저 의자와 돗자리로 점령당하고 마는 것이 기존의 국감장인데, 올해는 인원 제한으로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초선으로 처음 치러본 국감! 주어진 15분으로 국가의 잘못된 정책이 바뀌고 악법이 개정돼 억울하고 소외된 국민이 한 분이라도 줄어들 수 있다면 기꺼이 몇 개월 밤이라도 또 새울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여의도 국회의 밤은 불 꺼지지 않는 300개 의원실로 환하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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