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業의 본질' 묻는 젊은 경영자들 [송종현의 논점과 관점]

입력 2020-10-20 18:00   수정 2020-10-21 07:03

‘새로운 장(章)의 시작’이라는 제목의 정의선 신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취임사가 흥미로웠던 건 ‘안전’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정 회장은 2090자(字), 6분12초 분량의 취임사 중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실현해나갈 것”이라는 점을 가장 강조했다.

미국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이달 중 완전 자율주행을 공언한 터다. 열광하는 테슬라 팬과 투자자들 귀에 안전성에 대한 관련 업계의 우려는 들어오지 않는 분위기다. 이 와중에 정 회장이 안전을 얘기한 것은 구닥다리 같은 느낌도 준다.

하지만 안전은 자율주행, 차량공유 등을 포괄하는 모빌리티(이동) 사업이 갖춰야 할 가장 본질적 요소다. 테슬라, 우버같이 차를 첨단 정보기술(IT)이 집약된 플랫폼으로 여기는 기업들이 경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기초부터 튼튼히' 풍토 확산
그런 점에서 정 회장이 안전한 이동을 강조한 것은 CEO 재임 기간 내내 품질 개선에 집착한 아버지(정몽구 명예회장)의 경영철학 계승 의지이자 “완성차에 뿌리박은 우리는 테슬라와 다르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 현대차그룹의 강점과 경쟁 상대의 허점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무적인 점은 정 회장 같이 추구하는 지향점을 단단히 쌓고, 여기에 집중하려는 젊은 오너 3·4세와 창업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봐, 해봤어?”라며 성취에 온 힘을 쏟은 할아버지, ‘품질경영’과 같이 어떻게(how) 기업을 키울지에 대한 의지는 확고했지만 어떤 기업(what)을 만들지에 대해선 막연했던 아버지 세대와 확연히 달라진 부분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바는 깊은 궁리 끝에 도출됐어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10~20년 뒤에도 결코 변하지 않을 아이디어들’을 쉬운 언어로 표현한다. “나아갈 방향을 수도 없이 고민했지만, 결국 그 답은 고객이었다. 우리의 가치는 ‘고객의 삶을 바꾸는 감동’을, 남보다 앞서,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구광모 LG그룹 회장) “더 깐깐하게 좋은 상품을 발굴하고, 좋은 가격에 파는 게 온라인 쇼핑의 본질이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쌓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김슬아 컬리 대표)
세계무대서 마음껏 뛰게 해야'
물론 엉뚱한 데 한눈팔다가 나락에 빠진 경영자들도 있다. “돈을 버는 게 중요하지, 수단은 중요하지 않다”던 라임자산운용 40대 경영진의 추락은 ‘what’에 대한 성찰 없는 사업이 얼마나 사상누각(沙上樓閣) 같은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자신의 가치를 계속 입증해야 하는 것도 숙제다. 정 회장만 하더라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비웃음 받던 현대차그룹을 5위까지 끌어올린 아버지에 이어 미래차 분야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미증유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세계 1등 상품을 만들어내고, 기록적 이익과 고용을 창출해 휘청거리는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 경영능력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게 괜한 우려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4050이 주류인 오너 3·4세들은 경영권 승계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과 아버지라는 존재를 의식해 몸을 사리는 게 현실이다. 나이 어린 창업 기업인들도 뿌리 깊은 장유유서(長幼有序), 사농공상(士農工商) 문화에 갇혀 어느 자리에서건 눈칫밥 먹기 일쑤다.

지금은 이들이 세계무대에서 마음껏 활약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줄 때다. 기술혁명 시대에 젊은 세대의 기를 살리기는커녕 ‘기업규제 3법’ 같은 갖은 ‘족쇄’로 묶어버리는 건 남보다 앞서 미래로 뛰는 것을 포기한 자해행위와 다를 바 없다.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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