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脫원전 제동거나 했는데…공사 다 끊겨 올해가 정말 끝"

입력 2020-10-21 17:46   수정 2020-10-22 00:47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려 했는데 이제 빚덩이만 넘겨줄 판입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제발 우리 좀 살려주세요.”

휴대폰 너머로 절박함이 묻어났다. 경남의 원자력발전소 기자재 업체 B사가 설비 개선에 50억원을 투자한 것은 2015년이었다. 당시 정부는 원전이 미래 유망업종이라며 투자 확대를 권유했고 실제로도 신규 원전이 계속 지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신규 원전 건설은 백지화하고 기존 원전도 조기 폐쇄해 올해 26기인 국내 원전 수는 2034년 17기까지 줄어든다. B사의 지난해 매출은 7억원으로 투자비 회수는커녕 기업 존속도 어려운 지경에 내몰렸다.

한국경제신문과 21일 긴급 인터뷰를 한 B사 대표는 20년 이상 쌓은 원전 기자재 기술이 사장되게 된 것을 폐업 이상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는 “정밀도와 강도가 높은 원전 기자재를 제조하려면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며 “50년간 금속 가공 분야에서 일하며 획득한 기술을 사용할 곳이 말년에 사라질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관련 일감이 이미 줄고 있지만 가장 큰 ‘일자리절벽’은 올해 말부터 닥칠 전망이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2024년 마무리되지만 주요 공사는 올해 12월께 끝나기 때문이다. 이성배 금속노동조합 두산중공업지회 지회장은 “이미 부도 또는 폐업에 들어간 협력회사가 많다”며 “하지만 신고리 5·6호기의 주요 공사가 올 연말 끝나면 문을 닫는 중소협력업체가 대거 생겨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경남에 있는 A사는 탈원전이 본격화된 2018년부터 적자전환했다. 탈원전으로 2010년 100억원을 투자해 확충한 생산장비의 상당 부분은 멈춰 있다. 야근을 없애고 직원들을 내보내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올해까지가 한계다. A사 대표는 “불경기에 업종 전환은 엄두도 못 낸다”며 “너무 막막하고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원전 기자재 업체 C사 대표는 “탈원전 이후 매년 100억원씩 손실을 보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회사 직원 수는 현 정부 출범 이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는 “정부 또는 여당 관계자들을 만나 보면 원전 관련 산업을 소멸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한 것 같다”며 “돈을 쓸 줄만 알지 어떻게 벌지 전혀 고민이 없는 정부를 보며 희망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원전 설비 D사 대표는 “작년까지는 어떻게든 버텼는데 이제는 정말 돈 나올 구석이 없다”며 “과학적인 검증도 안 된 탈원전이라는 정치적 구호 하나로 수만 명의 원전 종사자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했다.

감사원 감사로 정부에 대한 실망은 더 커졌다. A사 대표는 “대통령 한마디로 공무원들이 (월성 1호기 경제성 왜곡 등) 거짓말을 하는데 어떻게 믿고 세금을 내겠느냐”며 “감사원 역시 외압이 있더라도 더 정확하게 실태를 발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B사 대표는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원전산업에 대해서는 관심을 완전히 끊었다”며 “월성 1호기 재가동이 어렵다면 신한울 3·4호기라도 건설을 재개해야 하지만 정부 움직임을 보면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이성배 지회장은 “전문가 분석과 국민 의견 수렴보다 정해진 목표에 끼워 맞춘 것이 감사원 감사로 드러나지 않았느냐”며 “두산중공업 외에 다른 원전 관련 근로자들과 함께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전업계의 어려움을 알고 있다”며 “연구개발(R&D), 금융 지원에 더해 수출 시장 개척 등 활로 개척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전 관련 R&D 과제는 지난해 종료된 가운데 2022년에야 재개될 예정이다. 이마저도 해체 및 안전 등 탈원전과 연관된 부문에만 지원된다. 금융 지원 역시 한국수력원자력을 통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민경진/노경목/구은서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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