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금·보증금·위약금…택배기사 옥죄는 '불공정 관행'

입력 2020-10-22 18:12   수정 2020-11-01 10:12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택배 물량이 급증한 가운데 택배기사가 잇따라 숨지고 있다. 논란이 커지면서 정부가 긴급점검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잘못된 관행과 과중한 업무가 계속되면 또 다른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리점과 불공정 계약 만연
22일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에 따르면 일부 중소 택배업체의 사업장에는 기사들이 내야 하는 보증금과 권리금이 있다. 지난 20일 극단적 선택을 한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의 택배기사는 택배 일을 할 지역에 대한 권리금 300만원과 보증금 500만원을 대리점에 낸 것으로 알려졌다. 불공정 계약이지만 일을 하기 위해서는 관행상 돈을 낼 수밖에 없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숨진 기사가 퇴사하려고 하자 대리점 측에선 후임자를 데려오지 않으면 권리금을 줄 수 없다는 식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자를 구하지 못하고 퇴사할 경우 비게 되는 택배기사에 대한 비용(인건비)도 전임자에게 청구하는 사례가 많다는 게 택배기사들의 주장이다. 본지가 입수한 해당 지점의 영업계약서에는 ‘일을 그만두려면 3개월 전에 퇴사 통지를 해야 하며, 후임을 구하지 못해 대리점에 손해를 끼치면 위약금 1000만원을 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연대노조 관계자는 “CJ대한통운의 일부 대리점도 보증금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본사 측은 이 같은 관행을 알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로젠택배 본사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CJ대한통운도 “모른다”는 입장을 밝혔다.

과로도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CJ대한통운 택배종사자 A씨가 휴게실에서 갑자기 쓰러진 뒤 숨졌다. A씨를 포함해 올해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택배 종사자는 13명이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급격히 증가해 A씨의 근무시간이 평소보다 50% 이상 늘어났던 것으로 파악된다”며 “고인이 평소 심장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지만 늘어난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일요일에도 쉬지 못하고 고된 노동을 해온 것이 이번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과로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배송 이전의 물품 분류 작업이다. 분류 작업은 택배를 배송하기 전 지역별로 모여 있는 화물을 트럭에 싣는 작업이다. 업무 시간의 절반 이상을 분류 작업에 쓰고 있어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노조 측 설명이다.
고용부 “실태조사 후 대책 마련”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일 국정감사에서 “이번 사건으로 권리금 관행을 알게 됐는데, (고인은) 과도한 권리금을 내고 일을 시작했다”며 “고용노동부가 국토교통부와 함께 이 문제를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택배종사자의 근로환경 실태를 긴급점검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부가 대리점-택배기사 간 계약의 불공정성을 따지긴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많다. 대다수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인 특수고용직에 해당해 현행법에서는 택배기사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할 근거가 없어서다. 고용부 관계자는 “불공정 계약 문제라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관리해야 할 성격으로 보인다”고 했다.

연대노조 관계자는 “대리점의 불공정 계약을 막기 위해 ‘표준계약서’를 만들어야 한다”며 “표준계약서에 택배기사의 업무 범위, 노동조건 등을 규정해야 또 다른 불상사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김남영/김기만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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