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미국 인텔의 낸드플래시, SSD(데이터저장장치) 사업을 90억달러(약 10조20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20일 체결했다. 주가는 인수 소식이 알려진 이후 지난 23일까지 3.2% 하락했다. 'SK하이닉스가 비싸게 주고 샀다'는 분석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과연 SK하이닉스는 인텔에 바가지 쓴걸까.
고려해야 할 건 있다. 인텔의 다롄 공장이 2010년에 본격 가동된 오래된 시설이란 점이다. 특히 인텔의 낸드 생산 방식이 '구식'이란 얘기가 나오는 '플로팅게이트'란 점에서 "SK하이닉스가 다롄 공장에 수조원을 추가로 투자해야할 것"이란 분석도 많다. SK하이닉스는 현재 플로팅게이트가 아닌 'CTF' 방식으로 3D 낸드를 생산 중이다.
SK하이닉스도 다롄 공장 추가 투자 가능성에 대해선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플로팅게이트' 방식이 약점이 될 것이란 지적에 대해 SK하이닉스는 동의하지 않는다. 플로팅게이트 방식을 고수했던 인텔이 수차례 밝혔듯이 "공간 낭비 없이 밀도를 높일 수 있고 CTF보다 안정적"이라는 평가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인텔은 현재 최고 적층 단수로 불리는 '144단' 낸드 개발 때도 플로팅게이트 방식을 고수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플로팅게이트와 CTF로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됐다고 볼 수 있다"며 "플로팅게이트 방식의 한계가 있을수도 있겠지만 시장에서 우려하는 것은 과도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롄 공장에 대한 추가 투자가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반도체산업에서 시설·설비투자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의 기업용 SSD 점유율은 7.1%(2분기 기준)로 삼성전자(34.1%)에 한참 못 미친다. 낸드를 SSD로 개발하는 ‘솔루션’ 기술력이 약한 게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보다 6년 정도 늦게 낸드플래시 사업에 진출했고 2008년 금융위기 때 감산과 투자 축소에 나선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텔 인수는 SK하이닉스의 약점을 일거에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기업용 SSD에서의 인텔의 위상은 더욱 강력하다. 인텔은 중앙처리장치(CPU) 개발 과정에서 쌓은 솔루션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업용 SSD 시장 세계 2위(29.6%)에 올라 있다. SK하이닉스(7.1%)와 합치면 삼성전자(34.1%)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선다.
주식 시장과 반도체 업계에서도 다롄 공장과 달리 인텔 '기업용 SSD' 가치에 대해선 인정하는 분위기다. 물론 SK하이닉스의 인수 과정에서 인텔의 핵심 인력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SK하이닉스의 큰 숙제다. 그렇다고 해도 회사에 축적된 특허와 노하우 등을 가져오는 것만으로도 SK하이닉스의 SSD 사업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경쟁 업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해도 인텔은 아직까지 반도체 시장 매출 세계 1위 기업이고 CPU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특히 D램 업체들이 DDR5 같은 차세대 D램 시장을 열기 위해선 인텔이 DDR5용 CPU를 개발, 출시해야한다. '협업'이 필수적인 것이다. 황민성 삼성증권 애널리스트(이사)는 "중요한 것은 양사간 발생 가능한 시너지 효과"라며 "이번 계약에서는 제외됐지만 향후 옵테인에 대한 생산협력과 CPU·메모리 간 협력구도도 확대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인텔이 '옵테인' 매수를 SK하이닉스에 권했다는 사실도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 '마켓인사이트' 23일 보도("조금 더 쓰시죠"…인텔, SK하이닉스에 '옵테인' 매각도 제안했다)로 확인됐다.
결론적으로 SK하이닉스가 10조원을 쓴 것에 대해 "싸게 샀다"고는 말할 순 없다. 그렇다고 '바가지를 썼다'고 평가하기에도 이르다. 몇년 뒤 '훌륭한 딜(deal)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는 분석이 많다. 기업용 SSD 경쟁력 강화, 인텔과의 협업 확대,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2위로 상승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계약의 성패는 몇 년 뒤면 나타날 것이다. 모든 것은 SK하이닉스에 달렸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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