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호스피스운동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어가는 환자들이 공통으로 비슷한 단계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내용을 1969년 출간한 저서 《죽음과 죽어감》에서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이란 다섯 단계로 정의한다. 이 연구는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고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생각과 담론을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았다. 퀴블러 로스와 그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는 슬픔에 빠진 사람도 죽음에 가까워진 사람과 비슷한 단계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함께 이론화했다.
두 사람이 정리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겪는 다섯 단계’는 이렇다. 당면한 상실에 대한 충격과 불신 단계인 ‘부정’, 사랑하는 누군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 만약이라는 가정과 후회가 가득한 ‘타협’, 상실에서 비롯된 슬픔으로 ‘우울’한 단계, 마지막으로 상실을 현실로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수용’ 단계다. 죽음을 극복하는 다섯 단계를 그대로 가져왔지만 그 해석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런 내용을 두 사람은 함께 쓴 《인생 수업》과 《상실 수업》을 통해 널리 알려 왔다.
어린시절 총기 난사 사건을 목격하고 비슷한 시기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한 케슬러는 평소 슬픔이 삶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그는 몇 년 전 스물한 살 아들이 약물중독으로 갑작스럽게 죽으면서 또 한 번 인생의 고통스러운 순간과 마주하고는 슬픔을 겪는 다섯 단계를 인지하는 것만으론 상실의 고통이 극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상실의 고통 속에서 ‘의미’의 길을 찾는 것만이 아들의 존엄을 지켜주는 방법임을 깨닫는다. 이후 그는 자신과 같은 슬픔을 겪는 이들을 위한 강력한 위로와 방법을 담아내기 위해 애써 왔다.
케슬러가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한 《의미 수업》은 그가 찾은 슬픔의 여섯 번째 단계이자 마지막 단계인 ‘의미 찾기’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모든 상실에는 의미가 있다”며 “죽음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해야 사별로 인한 아픔을 극복할 수 있고, 남은 사람의 삶도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의미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
저자는 ‘의미’는 개인마다 다르지만, 결국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나’ 자신에게 있다고 역설한다. 고인의 유품을 통해 그를 기억할 수도 있지만 그가 가졌던 의미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있는 나야말로 고인이 세상에 살았음을 증명하는 존재”라며 “고인과의 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의 교환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라”고 조언한다. 그 사랑 속에서 살아있는 내가 항상 고인과 함께 있음을 알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내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저자가 슬픔을 겪은 사람들과 만나며 이들이 경험한 다양한 사례를 보여준다. 어떤 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생전 좋아하던 인물의 우표를 모아 편지를 부칠 때마다 떠올린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이를 잃은 아빠는 글쓰기를 통해 딸과의 유대감을 찾는다. 자식이 죽고 난 뒤 자식의 장기를 기증해 새로운 의미를 찾는 부모, 부인의 유산 이후 일찍 아이를 잃은 부모들을 위로하는 장례지도사가 된 남자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모두 사연은 다르지만 저자의 주장처럼 절망 속에서 크고 작은 의미를 발견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슬픔도 엷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슬픔은 그대로다.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누군가에겐 크고 작은 의미를 주지만, 누군가에겐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안겨준다. 이 때문에 저자는 “내 모든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상실을 겪은 누군가에게 이를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상실에 대한 의미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기에 저자는 치유를 향해 나아갈지, 고통 속에 머무를지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슬픔의 다른 단계들과 마찬가지로 여섯 번째 단계 역시 능동적 태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저자도 아들을 잃고 한때 삶의 의욕을 상실했지만 아들이 남기고 간 추억의 흔적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이 책을 쓰는 과정을 통해 삶을 회복했다고 한다. 그는 “죽음이 생명을 가진 존재가 필연적으로 맞이해야 할 인생의 한 부분임을 받아들일 때, 그리고 그 상실의 슬픔을 직시하고 의미를 찾고자 할 때 우리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을지 알게 된다”며 “그것은 삶에 대한 희망”이라고 말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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