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법' 대안으로 상속권 상실선고제 유력

입력 2020-10-30 17:17   수정 2020-10-31 01:50

정부가 ‘상속권 상실선고’ 제도를 도입해 양육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부모 등의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수 고(故) 구하라 씨 사례처럼 수십 년간 양육의무를 내팽개친 친부모가 자녀 사망 이후 갑자기 나타나 유산을 상속받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20대 국회서 좌초된 ‘구하라법’
지난해 발생한 ‘구하라 사건’은 국민 공분을 일으켰다. 구씨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20여 년 만에 친모가 나타나 구씨의 유산을 받아간 것이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사망한 군인의 친모가 20여 년 만에 나타나 군인사망보상금 절반을 가져간 일, 2014년 세월호 희생자의 친부가 이혼 10여 년 만에 나타나 사망보험금 절반을 수령해간 사건도 논란이 됐다.

이를 막기 위해 지난 20대 국회에선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구하라법’을 발의했다. 상속인(상속을 받는 이)의 결격사유를 규정한 민법 제1004조에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으로서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사람’을 추가하는 내용이다. 현재는 상속인이 피상속인 혹은 피상속인의 배우자 등을 살해 및 상해하거나, 피상속인의 유언을 위조하는 등 다섯 가지 경우에 대해서만 상속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사람’이란 개념이 모호하고 무분별한 상속 관련 소송을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한 변호사는 “가령 부모가 가출했다고 하면 자녀가 몇 살 때, 몇 년간 떠나 있어야 의무를 게을리했다고 볼 수 있는지 등을 일률적으로 규정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피상속인(사망자)의 의사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왔다. 상속인이 친족 간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해서, 피상속인이 상속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해 결론 내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자녀가 친부모를 용서하는 경우 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망 이후에도 유족이 청구 가능
법조계에선 상속권 상실선고 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피상속인이 생전 가정법원에 “상속인이 될 자가 친족 사이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는 등의 이유로 특정 상속인에 대한 상속권 상실선고를 청구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다. 법률을 통해 일률적으로 ‘얌체 부모’의 개념을 규정하고 상속권을 박탈하는 대신 법원이 각 가정의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해 판단할 권한을 주는 것이다. ‘부모’가 봉양을 제대로 하지 않은 ‘자녀’에 대해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구씨처럼 유언이나 의사 표시 없이 갑자기 사망한 경우엔 상속권 상실선고 제도가 유명무실할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법조계에선 피상속인이 사망한 이후라도 그의 생전 의사를 추정할 만한 사유가 있다면, 예외적으로 고인의 배우자 및 직계혈족 등 유족이 특정인에 대한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거론하고 있다.

법무부도 이 같은 흐름이 타당하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상속제도 개편과 관련해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학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 중이다. 법무부는 상속권 상실선고 도입을 골자로 하는 민법 개정안을 정부 입법 형태로 국회에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법무부 측은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된 안은 없다”고 밝혔다.

한편 서영교 의원 측은 21대 국회에서 기존 구하라법을 재발의했으며 이 법안의 통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서 의원은 “자녀 양육의 의무를 저버린 친부·친모의 상속권을 제한하는 조항이 반드시 민법에 들어가야 향후 분쟁의 주도권을 양육자 등에게 줄 수 있다”며 “상속권 상실선고제로는 ‘제2, 제3의 구하라’를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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