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으로 본 도덕경제학

입력 2020-10-30 17:13   수정 2020-10-31 01:44


삼진그룹의 고졸사원 이자영(고아성 분)은 대리가 되는 게 목표다. 입사한 지 8년이 지났지만 그의 업무는 늘 허드렛일이다. 아침마다 커피를 타고, 사무실 청소를 한다. 담배 심부름도 자영의 몫이다. 자신보다 늦게 입사한 최 대리(조현철 분)에게도 꼬박꼬박 ‘대리님’이라고 불러야 한다.

자영에겐 꿈이 있다. 빨래 건조를 따로 할 수 있는 가전을 만드는 것이다. 고졸 사원에게 꿈을 펼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회사는 토익 600점을 넘으면 대리 진급을 시켜주겠다고 고졸 사원들에게 제안한다. 자영은 ‘아이 캔 두 잇’을 외치며 영어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영은 회장 아들인 오태영 상무(백현진 분)의 심부름으로 찾은 삼진그룹 옥주공장에서 페놀이 방류되는 현장을 목격한다. 꿈에 그리던 대리 진급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 자영과 동료들은 피해 주민들을 위해 기꺼이 내부고발자가 되기로 한다. 이들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이타심이었다.
사회적 비용 커지는 외부효과
지난 21일 개봉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에 빠진 극장가에서 오랜만에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영화다. 개봉 1주일 만에 54만 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1990년대 회사에서 고졸 사원들을 위해 영어토익반을 개설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공장에서 폐수가 나오는 것을 목격한 자영은 회사에 바로 보고한다. 회사는 미국 환경연구소에 검사를 의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밝힌다. 유출된 양이 많지 않아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 자영과 직원들은 공장 근처 주민들에게 이 내용을 설명하고, 합의서를 받는다. 삼진그룹이 사과하며 내민 합의금은 모두 합쳐 고작 2000만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폐수가 나오고 있었고, 검사서도 조작됐다는 것이 드러난다. 자영과 그의 동료 유나(이솜 분) 보람(박혜수 분)은 그 범인으로 오 상무를 지목하고 사건을 추적한다.

삼진그룹이 기판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페놀을 무단 방류한 것처럼 특정 경제주체의 행위가 다른 주체에게 의도하지 않은 혜택이나 손해를 발생시키는 것을 ‘외부효과’라고 한다.

환경오염 등이 발생하는 부정적 외부효과(외부불경제) 외에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회에 도움을 주는 긍정적 외부효과(외부경제)도 있다. 경제학에서 주로 예를 드는 게 꿀벌을 키웠을 때 주변 나무와 꽃들이 수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목가적인 예밖에 없는 것은 이로운 외부효과를 낳는다고 하더라도 어떤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어서 사례가 많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환경오염과 같은 해로운 외부효과는 무분별하게 증가할 수 있다. 폐수를 방류한다고 해도 (은밀하게 해 들키지 않으면) 이렇다 할 불이익이 없고, 오히려 개별 경제주체의 비용은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영화 속 대사처럼 ‘회사는 언제나 비용이 덜 드는 쪽으로 행동’한다.

외부효과가 있을 때 개인과 사회가 인식하는 비용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 <그래프>에서 삼진그룹처럼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기업은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만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린다. 생산량은 Q에서 결정된다. 하지만 인근 주민의 건강이 악화되고, 농작물 생산이 피해를 보는 등의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Q가 최적 생산량이다.
정부 개입으로 오염 막을 수 있을까
이처럼 기업, 개인 등 경제주체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과잉 혹은 과소 공급되면 ‘시장실패’가 일어난다. 그러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명분이 생긴다.

정부가 개입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오염에 대한 부과금을 내게 하는 방식이다. 방출량에 따른 오염부과금을 낸다면 비용이 늘어나는 만큼 자발적으로 양을 줄이게 된다. 또 하나는 직접 통제다. 기업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오염 물질을 방출할 수 없게 규제하는 것이다.

꼭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널드 코즈는 유명한 ‘코즈 정리’에서 외부효과에 영향을 받는 모든 이해당사자가 자유로운 협상으로 서로의 이해를 조정할 수 있다면 정부 개입 없이도 효율적 자원 배분, 즉 ‘파레토 최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부는 이런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제도적, 행정적 지원을 하는 데만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격이 설명할 수 없는 이타심
영화는 반전을 거듭한다. 범인은 회장 아들이 아니었다. 회사를 적대적으로 인수합병하려는 글로벌캐피털과 이를 위해 회사에 취업한 빌리 박 사장(데이비드 맥기니스 분)이었다. 이들은 일부러 페놀 유출 사고를 만들어 삼진그룹 주가를 하락시키고, 이때 주식을 매입해 지분율을 높였다.

폐수 방류 사실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자영과 동료들은 회사에서 해고될 뻔한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조력자를 찾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한다.

자신들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모습은 ‘인간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의해 움직인다’는 기존 경제학적 가정과는 어긋난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가격)’이 작동하는 시장에선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기도 하다. 고전경제학에선 이런 도덕적 행동이 이윤 추구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코로나19 초기 대구가 어려움을 겪자 의료진은 생업을 접고 대구로 향했다. ‘라면 형제’를 위한 기부금은 20억원 가까이 모였다. 새뮤얼 볼스는 그의 책 《도덕경제학》에서 인간의 순수한 이타심이 경제적 인센티브보다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봤다. 영화 속 자영은 “삶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회사가 단지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미가 있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볼스는 또 경제적 유인이 아니라 사회적 요인으로 사람이 행동하는 것은 자유주의적 사회질서가 발전된 나라일수록 강화된다고 했다. 시장과 법치라는 규범이 작동하는 곳에서는 생면부지의 사람들도 서로간에 관대하고, 신뢰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영과 동료들의 활약으로 마을 주민들은 최대 1억3000만원의 보상금을 받게 된다. 삼진그룹은 마을 재생사업도 약속한다. 자본주의가 ‘모든 것이 교환의 대상이 되고 금전적 타락의 시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언에서 벗어난 것은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믿음, 신뢰 등 사회적 도덕으로 움직인 자영 같은 개인들 덕분 아닐까.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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