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뉴딜정책'과 박근혜 '창조경제'의 공통점 [노경목의 미래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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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1-01 05:17   수정 2020-11-01 09:18

문재인 '뉴딜정책'과 박근혜 '창조경제'의 공통점 [노경목의 미래노트]



누가 집권하든 성장의 불씨를 되살리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높은 경제성장은 국민 전반의 소득 상승과 더 많은 기회를 불러오며 한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 경제적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이어 이번 정부에서 제기된 그린·디지털 뉴딜은 성장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안간힘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피해로 성장에 대한 목마름은 더 커졌다. 언택트 등 새롭게 떠오르는 트랜드가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전망이 애초에 잘못됐다는 분석도 있다. '성장'이라는 단어가 매우 특수한 시기에 나타날 수 있는 일종의 비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이다.
혁신 통한 성장, 한계에

2012년 미국의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흥미로운 그래프 하나를 내놨다. 18세기 이후 세계1위 경제국가의 경제성장률을 분석한 것이다.

그래프 왼쪽의 파란선은 산업혁명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한 영국의 경제 성장률이다. 20세기초 미국이 영국을 누르면서 미국의 붉은색 그래프로 대체된다.

이 그래프를 보고 있으면 성장이라는 것 자체가 인류 역사상 이례적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고든 교수는 1764년 방직기 발명으로 시작된 1차 산업혁명 이전까지 영국의 경제성장률을 연 0.2%로 잡았다. 성장이라는 것 자체가 근대라는 시대의 특수한 산물인 것이다.

선진국이 되거나 국가경제 규모가 커진다고 경제성장률이 꼭 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다. 영국과 미국의 그래프를 합쳐 보면 두 나라는 200년 가까이 경제성장률 상승을 경험했다. 꼭 경제 1위 국가가 아니더라도 중국을 제외한 중진국들은 21세기 들어 이전 세기보다 낮은 성장 속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같은 성장률 하락의 원인으로 고든 교수가 지적한 것은 '혁신의 질'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인류의 삶을 아무리 크게 바꿨더라도 '자동차 및 수세식 화장실'을 놓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는 게 혁신의 질적 차이다. 기술 발전과 새로운 산업의 대한 투자로 혁신이 계속 나타나고 있지만 2차 산업혁명을 통해 이룩한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을 앞으로 재현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기 등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2차 산업혁명의 결과 1891년부터 1972년까지 81년간 미국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연평균 2.3%를 기록했다. 이 같은 생산성 향상은 인터넷 발명으로 정보기술(IT) 붐이 형성된 1996년 이후에도 계속됐지만 8년 뒤인 2004년부터 성장률이 낮아졌다.

또 다른 혁신이 나타나더라도 “고속성장기에는 없던 장애물이 나타나 성장률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고든은 주장한다. 그는 노동력 감소와 교육 수준 저하, 환경 등 6가지를 성장 저해 요인으로 꼽았다. 이 같은 요인이 앞으로 1인당 GDP 증가율을 각각 0.2~0.5%포인트까지 떨어뜨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제성장이 사실상 제로 수준까지 떨어지는 국면을 피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고든에 따르면 세계 1위국의 1인당 GDP 증가율은 1760년대 1차 산업혁명을 통해 상승하기 시작, 전기와 자동차 발명으로 대표되는 2차 산업혁명(1870~1900년)을 거치며 1950년대 2.5%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하락했다. 인터넷과 이커머스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1996~2004년) 이후인 2007~2027년에도 연평균 성장률은 1.4%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고든은 “이 같은 추세대로라면 2100년 미국의 1인당 GDP 증가율은 0.2%로 사실상 제로성장을 할 전망”이라며 “산업혁명 이후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한 250년은 인류 역사상 독특한 시기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조적인 저성장 불가피
재미있는 것은 고든 교수와 사상적 배경이 전혀 상반되는 진영에서도 비슷한 분석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다.

두 사람은 2016년 내놓은 '1869년 이후 미국 경제의 기술 및 분배의 역사적 추세'라는 연구 보고서에서 1870년부터 2014년까지 전년 대비 노동 및 자본수익률 증감을 분석했다. 각 생산요소가 투입 대비 어느 정도의 산출을 내고 있는 것인지 살펴본 것이다.

검정색이 자본생산성, 흰색 동그라미가 노동생산성이다. 노동보다는 자본에서 생산성이 크게 악화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자본생산성은 1923년 정점을 찍은 이후 꾸준히 하락해 1960년 이후에는 전년보다 떨어지는 경향을 나타낸다.

이들의 분석은 "구조적인 자본의 이익률 하락이 자본주의를 위기에 빠뜨릴 것"이라는 명제가 마르크스 경제학의 골자와 다르지 않다. 고든 교수의 연구에서 나타났듯 미국 경제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는만큼 생산요소의 생산성 하락은 불가피하다.

특기할만한 점은 뒤메닐과 레비도 이같은 생산성 하락의 원인으로 기술 혁신의 둔화를 든 것이다. '혁신의 곤란'이라고 지칭한 개념을 통해 자본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을 동시에 높이는 기술은 갈수록 희소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새로운 기술 혁신이 자본과 노동 중 한쪽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더라도 다른 쪽은 떨어지며 경제 전체의 성장속도는 둔화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대 이후 세계 경제 성장은 기술 혁신에 상당 부분 의존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이같은 방식으로 지속하기 어렵다는 결론은 고든 교수의 그것과 동일하다.
성장에 대한 정부 역할 재정립할 때
문재인 정부의 뉴딜 정책도 공허한 구호에 그쳤던 창조경제, 녹색성장 등 이전 정부의 실패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조롱하거나 그같은 노력 자체를 헛된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각각 250년, 150년간의 미국 경제를 분석한 석학들의 연구에서 살펴볼 수 있든 경제 성장률 하락은 장기간의 뿌리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5년 단임제 대통령의 의지나 진정성으로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대통령과 정부가 반성해야할 부분도 있다. 자신의 임기 내에 무언가 대단한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선전하고 예산부터 쏟아붓는 행위를 지양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문재인 정부 들어 '혁신성장'으로 바뀌고,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에너지전환'으로 간판을 바꿔달았지만 두 정책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담당 공무원들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좌파와 우파 중 어느 쪽이 집권하든 소규모 개방국가, 후발 산업국이라는 한국 경제의 물리적인 조건을 바꿀 수는 없다. 한국 산업의 강점과 약점이 명확한 가운데 성장을 위해 내놓을 경제정책과 산업정책에 근본적인 차이도 크지 않다.

저성장을 반전시키겠다는 공허한 구호보다는 관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선명성 경쟁을 하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필요한 것들을 차근차근 해나가야 할 때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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