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무엇이 중한디"

입력 2020-11-02 17:36   수정 2020-11-03 00:16

《삼국유사》와 《명심보감》을 보면 효성(孝誠)이 뛰어난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러 이야기 가운데 신라시대 인물인 손순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손순을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사람들을 만나면 손순이 바로 경주(월성) 손씨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은근히 가문 자랑도 하며 대화를 자연스럽게 풀어내기도 한다. 조상이 효자라고 해서 내가 효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 효가 뭔지도 잘 몰랐고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인지도 잘 몰랐다. 그저 부모님께 서운한 마음만 가지고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를 대하는 내 모습을 보고 아버지께서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인정을 받은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기분에 들뜨게 됐고, 그동안 서운하게 여겼던 마음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비록 작은 일이었지만 지금도 아버지께 인정받을 때의 마음은 잊히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성이 깊은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효도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도 잘 안다. 더구나 물질을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정신적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산되고 있으며, 심지어 사랑조차도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이 많아진 세상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부모에게 용돈을 드리고 물질적으로 봉양하는 것만을 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질적 봉양만을 효도라고 한다면 부모에게 물질적 봉양을 하는 것이 반려동물을 보살피고 먹이를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요즘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많은 정성을 쏟는다. 추울 때는 옷을 입히고, 여행을 떠날 때는 호텔에 맡기며, 살이 찌면 운동도 시킨다. 그런데 이런 것도 이제는 옛말이 되고 있다. 반려동물 전문 TV채널도 나오고, 운동량을 체크하는 기계는 물론 로봇 도우미 서비스도 시행되고 있다. 이 얼마나 따뜻한 마음인가.

이 마음을 잘 간직한 채 효에 대한 생각도 하면 좋지 않을까? 반려동물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이 부모에게는 미치지 않는다고 하는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 본래 사랑은 가까운 부모형제로부터 시작해서 그 마음을 미루어 이웃을 사랑하며, 그런 다음에 마지막으로 만물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사랑에는 단계가 있고 그 단계를 점차 확산시켜 모든 만물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부모에 대한 사랑이 반려동물에게 하는 사랑보다도 못하다고 하니 본말이 뒤집힌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효를 과거의 유물로만 생각하지 말고 인간다움의 출발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사랑의 대상 가운데 가장 가까운 대상이 바로 부모형제 아니겠는가. 몇 해 전 영화에 나왔던 대사처럼 “무엇이 중한디”를 다시 돌이켜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누구처럼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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