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희극인의 눈물

입력 2020-11-03 17:08   수정 2020-11-04 00:49

‘코미디를 보다가 와락 운 적이 있다/ 늙은 코미디언이 맨땅에 드러누워/ 풍뎅이처럼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 그때 나는 세상에 큰 비밀이 있음을 알았다/ 웃음과 눈물 사이/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어두운 맨땅을 보았다’(문정희 시 ‘늙은 코미디언’ 중)

2016년 작고한 코미디언 구봉서는 “웃음 하고 설움은 종이 한 장 차이”라며 “눈물을 알지 못하면 웃음도 알 수 없으므로 눈물 스민 웃음을 끌어내는 게 진짜 코미디”라고 말했다. 자녀들에게는 ‘딴따라 아버지’ 때문에 놀림 받을까봐 특별히 엄하게 교육을 시켰다.

희극인(喜劇人)은 삶의 모순이나 사회 부조리를 풍자하며 웃음을 선사하는 사람이다. 그냥 웃기려는 게 아니라 웃음 뒤에 찾아오는 생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게 궁극적인 임무다. 우리가 배꼽 잡고 웃다가 어느 순간 썰물처럼 가슴을 적시는 슬픔에 빠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희극인은 스스로 웃어선 안 된다. 평소에도 피나는 노력으로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 ‘슬픈 광대’ 역할의 피에로 얼굴에 눈물 무늬가 그려져 있듯이 ‘얼굴로는 웃지만 마음으로는 우는 사람’이 희극인이다.

빌리 조엘의 명곡 ‘레닌그라드’에 나오는 러시아인 빅토르 라지노프도 피에로가 돼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지만 그 이면에는 전쟁의 상처가 깊게 숨겨져 있다. 희극과 비극을 넘나든 배우 로빈 윌리엄스 또한 우울증으로 힘겨워했다. 영화 ‘조커’를 본 관객들은 “분해도 웃어야 하는 게 내 모습 같아서 울었다”며 동질감을 느낀다.

그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개그우먼 박지선은 고려대 4학년 때 KBS 공채로 출발해 3년 만에 연예대상을 탔다. 시상식 때 “오늘도 ‘생얼’인데 얼굴 이상하지 않아요?”라며 펑펑 울던 그는 피부질환과 햇볕 알레르기 때문에 화장도 못하고 늘 양산을 쓰고 다녀야 했다.

때로는 “오랜만에 날씨가 좋아서인지 엄마가 운동화를 빨아주셨다. 내 칫솔로” 등 가족에 관한 애정을 자주 표현하며 웃음을 선사했지만 생일 하루 전 끝내 하늘로 가고 말았다.

독일 희극작가 카를 발렌틴의 말처럼 희극인은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이다. 자기의 익살에도 웃을 수 없으니 말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명언도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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