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누가 홍남기 부총리를 '바보형'으로 만들었나

입력 2020-11-04 17:40   수정 2020-11-05 00:11

애초에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이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일 사표를 던지게 한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요건 강화 계획 말이다. 정부는 2018년 2월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내년부터 종목당 3억원으로 대주주 과세 요건을 강화하기로 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과세형평 제고를 위해 대주주 주식양도차익 등 자본이익, 금융소득 과세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홍 부총리가 임명된 건 대통령이 약속하고 시행령 개정 작업이 끝난 뒤인 2018년 12월의 일이었다. 만약 ‘동학개미’의 매도 행렬로 올해 대주주 요건 강화 계획을 재조정해야 한다면 그건 누구의 책임일까. 아무도 총대를 메지 않자 홍 부총리는 정부를 대표해 정책을 번복한 책임을 지고 사직서를 냈다.

홍 부총리의 사의 표명을 두고 “터질 게 터졌다”는 게 관가의 지배적 반응이다. 대주주 요건을 둘러싼 혼란은 빙산의 일각이다. 주요 사안마다 청와대와 여당이 홍 부총리의 뜻을 꺾는 일이 반복돼 왔다. 그런 와중에 부동산 정책 실패의 원흉으로 지목돼 ‘바보형’이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12월 홍 부총리를 임명하면서 ‘경제 원톱’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공직자로서 제일 중요한 덕목은 열심히 하는 것인데 홍 부총리의 성실함을 평소 눈여겨봤다”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홍 부총리는 조금씩 청와대나 여당과 각을 세웠다. 재난지원금 선별지원 등 ‘나라 곳간지기’로서 홍 부총리가 소신을 꺾지 않으면 당청은 그를 찍어누르기 바빴다.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재정건전성을 위해 ‘재정준칙’을 도입하려 하자 여당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공공연하게 “홍 부총리가 재정준칙을 계속 고집한다면 함께 갈 수 없다”고 했다. 홍 부총리가 이런 협박 등을 견디다 못해 사의를 밝히자 “정치를 한다”고 비난한다.

대통령의 약속은 이제 경제 관료들에게 골칫거리가 됐다. 탈(脫)원전 정책이 대표적이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추진하다가 줄줄이 감사를 받고 징계 대상이 됐다.

청와대가 사직서를 반려하자 홍 부총리는 4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임명권자 뜻에 맞춰 부총리로서의 직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여당 출신 정세균 국무총리는 “원래 여당과 정부는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고 이를 조율하는 게 당정 협의의 기능”이라고 했다. 협의의 사전적 정의는 ‘둘 이상의 사람이 협력해 의논함’이다. 일방의 주장이 강요되는 ‘무늬만 당·정·청 협의’가 거듭된다면 결국 ‘제2의 홍남기 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런 갈등이 국민의 삶을 행복하게 할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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