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이정은·노정의 '내가 죽던 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위로 [종합]

입력 2020-11-04 17:48   수정 2020-11-04 18:38


약진하고 있는 여성중심영화 속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또 한편의 여성서사 영화가 개봉된다. 영화 '내가 죽던 날'을 통해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세 명의 여배우와 여성 신예 감독 박지완이 손을 잡았다.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연출을 맡은 박지완 감독은 단편영화 '여고생이다'(2008)로 제1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가능성을 인정받고 '내가 죽던 날'로 장편영화 데뷔를 치른다. '내가 죽던 날'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처와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건넨다.


4일 열린 영화 '내가 죽던 날' 언론시사회에서 박지완 감독은 "일부러 여성 서사 영화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관심있는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우연히 여성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영화가 됐다. 제가 생각할 땐 여성 서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참여하는 분들이 그런 의미를 발견해 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캐릭터에 가장 자연스러운 것으로 성별을 배열했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여성서사로 읽어주신다면 거기서 더 얘기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상황에서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리고 감내하는 사람들이 우연히 여성이었고, 이들이 연대를 이루어 하는 것이 제게는 자연스러웠다"고 설명했다.

캐스팅에 대해 박 감독은 "김혜수 배우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영화다. 다른 배우들께도 시나리오 드렸을 때 연락이 빨리 왔다. 김혜수와 함께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다"고 했다.

'내가 죽던 날'은 형사 현수가 한 사건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수사극으로 시작해 드라마로 끝난다. 이에 대해 "기본적으로 미스터리라고 생각한다. 형사는 '들여다볼 기회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경력이 많은 형사가 범죄를 다루는 접근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통해 안 보이던 사람을 보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전체적으로 현수가 사건을 쫓아가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도둑들', '차이나타운' 등 매 작품 변화무쌍한 모습을 선보이며 연기력과 흥행력을 인정받은 대한민국 대표 배우 김혜수가 사라진 소녀의 흔적을 추적하는 형사 ‘현수’ 역을 맡아 사건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형사의 집요함은 물론, 일상이 무너진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진정성 있는 연기로 대체불가 배우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김혜수는 "이 영화를 선택했을 때 시기적으로 스스로 드러낼 수 없는 좌절감, 상처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갔다. 실제로 촬영 하며 함께 만나는 배우들을 통해 많은 위안을 얻었다"고 말했다.

현수 캐릭터에 대해 김혜수는 "제목을 봤을 때 마음을 빼앗겼다. 제게 운명같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실제 시나리오를 읽으니 뭔지 모르지만 내가 꼭 해야 될 이야기였다. 저도 위로가 간절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수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은, 감독과 제작진 배우들과 많이 이야기하고 촬영하면서도 의견을 교류했다. 보완할 부분을 제안했다. 다른 것보다 이 이야기에서 대부분 인물에게 중요한 것은 '진실'이었다. 설정한 모든 것들, 작위적인 것은 배제하자는게 컸다"고 강조했다. 또 "잠을 못자는데 악몽을 꾼다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실제로 제가 꿨던 꿈이었다. 그런 부분들을 이야기하며 보완할 부분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김혜수는 자신의 대표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형사 역을 연기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시그널'의 형사 역할을 인상적으로 봐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엔 차수현과 접근 자체가 달랐고, 의식하지 않고 역할로만 만났다"고 선을 그었다.


아카데미와 칸을 휩쓴 화제작 '기생충'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한 대세 배우 이정은이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섬마을 주민이자 소녀의 마지막 행적을 목격한 ‘순천댁’으로 분해 목소리 없이 작은 몸짓과 표정만으로 디테일한 감정을 전달하며 연기파 배우의 저력을 과시했다.

이정은은 "소리가 없는 것을 혹시나 관객들이 집중해서 볼 수 있을까 했다. 잘 듣고 잘 반응하려고 노력했다. 언어가 없는 순간을 전달하기 위해 필체 연구에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연할 때 사지불구인 어머니를 데리고 사는 역할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 많은 자료를 찾아봤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상상을 하는데 도움이 됐다. 소리를 내고, 안 내고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죽을 고통 속에서 어떻게 삶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그 심정을 이야기하는 순간부터 표정에 신경쓰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탄탄한 연기력의 아역배우에서 영화계가 주목해야 할 차세대 배우로 성장한 노정의가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라진 소녀 ‘세진’ 역을 맡아 한층 성장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또한 김선영, 이상엽, 문정희 등 다양한 개성과 매력을 지닌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노정의는 "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당시에 마음의 상처가 컸던 상황이어서 세진으로 승화해 표현하고 싶었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고 아픈 상처를 가장 잘 표현하고 싶다. 모든 것을 잃은 어린아이의 모습, 표정을 드러내고 싶어 중점적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올해 20살이 된 노정의는 "잘 따라가고 싶다. 선배님들의 뒤를. 제가 부족하지 않은 후배가 되어 그 길을 걸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혜수, 이정은과 연기 호흡에 대해 노정의는 "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났다. 교장선생님 두 분이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냥 부담보다는 선배들과 함께하는데 완성도가 높은 작품에 누를 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나중엔 이번 기회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감사한 작품이라는 생각에 열심히 임했다"고 털어놨다.

김혜수의 인상적인 신 속엔 이정은이 있었다. "이정은과 마지막에 만나는 신이 있다. 각자 준비하고 촬영하려고 봤는데, 눈물이 났다. 이정은과 손을 잡고 한참을 울었다. 너무 소중하고 완벽한 순간이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보석처럼 훌륭하고 소중한 동료를 만났고, 값진 친구들을 얻었다. 그것 만으로도 큰 행운이고 축복"이라고 했다.

이정은은 "저 역시 그때가 기억난다. 당시 어떤 감정이였냐면 배역의 감성도 있고, 김혜수는 스타로서 50년을 살았다. 위치는 달랐지만 세월을 함께 보내온 연대가 느껴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어떤 일을 겪고 왔는지 우리 뒤 세대의 일들을 생각하는 순간인데, 노정의와 만나는 순간들 되게 좋은 경험이었다. 제가 에너지를 받았다"고 거들었다.

노정의는 "이정은 선배와 같이 감정신을 찍는데 연기였는지 눈물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정말 눈빛만으로 위로를 받았다. 누군가 안아주는 느낌이 들어 눈물이 많이 났다. 이렇게 편하게 연기를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연기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위로를 받았기에 지금 밝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인사했다.


김혜수는 "여성서사를 다룬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영화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오래하다 보니 의미와 책임감을 부여받기도 한다. 배우로서 저의 실체는 제가 맡은 거 해내느라 버둥거리며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따뜻한 연대감이 충만했던 현장"이라며 "관객 여러분께 어떻게 다가갈지 사실 모르겠다. 저희의 메시지가 있지만 받아들이는 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누군가 됐건가 남들이 모르는 상처, 고통, 좌절같은 순간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요즘처럼 지치는 시기에 극장 오기가 쉽지 않겠지만 영화 보는 분들에게 조용한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이정은은 "여성서사라는 말 대신 '우리들의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영화가 많이 나올수록 여성 캐릭터가 더 입체적이고, 더 풍부한 영화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내가 죽던 날'은 오는 12일 개봉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사진=최혁, 영상=유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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