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검란과 신언패

입력 2020-11-04 17:40   수정 2020-11-05 00:14

권력자나 윗사람 치고 비판의 목소리를 고깝지 않게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때로는 고언(苦言)에 귀를 닫는 수준을 넘어 물리적·제도적으로 차단하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광군(狂君)으로 불리는 조선시대 연산군은 언로의 통제가 유독 심했다.

연산군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인사를 파악하기 위해 주요 사안에서 재상들이 제시한 의견을 초록으로 따로 작성해 보고토록 했다. 입관한 내관과 승지, 사관의 이름을 모두 적도록 해 발언자를 색출할 근거를 마련했다. 그는 “나라가 평안한데도 대간(臺諫·감찰관 및 간관)이 상소를 자주 하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하다”며 그래도 아뢸 일이 있으면 연유와 성명을 미리 밝히고, 입궐한 횟수까지 보고토록 했다.

압권은 ‘신언패(愼言牌)’였다. “입은 화(禍)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몸이 편안할 것이다”라는 문구의 패를 관원들에게 채우며 ‘입’을 틀어막았다.

최근 때아니게 신언패의 위압적인 발언 통제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주 검찰 내부망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라는 검찰 개혁의 핵심이 크게 훼손됐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평검사에 대해 “커밍아웃 해주시면 개혁만이 답”이라고 ‘공개 저격’하고 나선 것이다. 조직의 인사권자가 내부 비판자를 반(反)개혁 세력으로 몰고, 불만의 목소리를 손수 찍어 누르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평소라면 신원을 밝히면서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길 꺼렸을 검사들이 300명 넘게 추 장관을 비판하는 댓글을 달고 나섰다. ‘검란(檢亂)’이라는 용어마저 회자되고 있다.

법무부 장관과 일선 검사가 이처럼 날 선 대립을 이어가는 기저에는 정치 권력이 검찰권을 장악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검찰 개혁’이란 구호를 앞세워 정권에 순응하지 않는 검사를 좌천시키거나 사직을 압박해 온 방법론에 대한 반감도 강하다.

급기야 윤석열 검찰총장이 법무연수원 강의에서 “국민이 원하는 진짜 검찰 개혁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예사롭지 않은 발언이다. 위력으로 비판을 억누르는 것은 효과가 없을뿐더러 더 큰 반발을 초래했다는 것을 ‘신언패’ 이후 전개된 역사가 잘 보여준다. 이런 역사의 교훈을 잘 되새기길 바란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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