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임진왜란의 이면,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입력 2020-11-08 08:11  


‘임진왜란’, ‘임진조국전쟁’, ‘분로쿠역(文祿役)’, ‘만력 조선전쟁’, ‘조일전쟁’.

이는 모두 1592년 4월부터 1598년 12월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7년간 벌어진 전쟁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임진왜란’에는 피해자 조선 정부의 시각이 담겼다. ‘임진조국전쟁’은 북한이 자체 역사관에 맞게 교정한 용어다. 분로쿠 역은 일본이 당시 천황의 연호를 따른 명칭이다. ‘만력 조선전쟁’은 중국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만력은 조선의 동맹군으로 참여한 명나라 황제의 연호를 사용해 만들었고, 현대에는 ‘항왜원조’로도 사용한다. 조일전쟁이라는 용어는 근래에 우리 학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전쟁은 다른 관점으로 보면 한·중·일이 삼국통일전쟁 이후 1000년 만에, 또는 여몽 연합군의 일본 공격 이후 350년 만에 격돌한 동아시아 국제대전이다. 즉 국가 간의 대결을 넘어 동아시아의 질서 재편을 놓고, 육지세력과 해양세력이 대규모의 육지전과 해양전을 동시에 벌인 7년간의 장기전쟁이었다. 전쟁의 목적과 배경도 정치적인 패권 장악뿐만 아니라 무역권과 무역망, 각종 자원의 획득, 문화재 약탈, 천주교의 전파, 심지어는 조선 도공을 비롯한 노예용 포로 획득 등이었다. 조선·일본·명을 주축국으로 삼고, 주변의 여러 나라들이 이해관계를 놓고 전쟁의 향방에 영향을 끼쳤다. 전쟁의 결과는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체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일본의 에도 막부, 청나라, 중가르 제국의 등장, 유구국의 일본화 시작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의 정치질서에도 영향을 끼쳤다.

15세기에 유럽에서 시작된 ‘지리상의 대발견’, ‘대항해 시대’는 16세기 중반에 이르러 동아시아를 세계 무역망으로 끌어들였다. 이로써 차·실크·도자기·향료·후추 등의 상품을 매개로 유라시아 세계의 동서를 연결하는 단순무역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군사력과 비약적으로 발전한 조선술 항해술을 갖춘 유럽세력은 아메리카(멕시코 브라질), 유럽(에스파냐·포르투갈)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명), 일본, 조선까지 이어진 긴 무역망을 구축했다. 이와 함께 영토와 자원, 무역권의 획득을 비롯한 종교(기독교)의 조직적인 전파, 신기술과 신무기의 거래라는 복잡한 관계망을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동남아시아의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끼쳤고, 태국, 베트남, 유구국 등 국가들의 정치적인 상황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포르투갈은 이미 1513년에 명나라에 진출했고, 1557년에는 마카오의 사용권을 획득했다. 이를 바탕으로 유구와 일본으로 진출을 시작해 임진왜란 때 사용한 조총 등의 무기와 전투기술을 공급하고, 극소수의 인원이 양 진영의 전투원으로 참여했다.

이 무렵 전쟁의 주축국인 명나라는 어떠한 상황에 처했을까? 건국한 초기부터 왜구의 침략으로 해안지역이 심각하게 약탈당했고, 이로 인해 해금정책을 실시하면서 내륙국가로 전환했다. 하지만 남부 해안과 도서 지역은 자연환경과 문화, 종족, 역사, 생활조건의 특성상 해금정책은 실효성이 약했다. 다수의 중국인은 후기왜구에 대거 참여해 국제적인 해적집단으로 변모했고, 활동범위도 유구, 동남아시아 일대까지 확장됐다. 정부는 일본을 압박해 왜구의 근절을 요구하고, 감합무역을 허락하는 정책도 취했으나 도요토미 시대까지는 효험이 별로 없었다. 따라서 주민들은 대거 탈출을 시도했고, 동남아시아 일대와 심지어는 일본까지 거주지들을 확장했다.

대외관계도 불안정했다. 초기에는 북쪽에서 원나라의 잔여세력인 북원과 전쟁을 벌였으나, 이어 몽골계인 오이라트와 힘겨운 접전을 벌여 베이징이 함락당하는 등 위기에 처했을 정도였다. 한편 만주에서는 여진족이 강력해지고, 1589년에는 전쟁이 끝난 후 명나라를 멸망시킨 누르하치가 여진족을 거의 통일했다. 따라서 명나라는 경제적으로 막심한 손해를 안기는 조공무역을 하는 등 온건책을 쓸 수밖에 없었고, 이는 국방력과 경제력을 소진했다.

명나라는 전통적으로 실크·차·도자기 등을 수출했다. 그런데 효율적인 상업 유통과 세금 징수, 국방비 사용 등 때문에 은을 대거 사용했다. 은본위제를 채택하면서 멕시코 등 아메리카와 일본의 은이 포르투갈 상인들을 통해서 대거 유입됐다. 결국 명나라는 유럽 주도의 세계 무역망 체제로 점점 끌려 들어갔다.

그렇다면 전쟁을 일으킨 당사국인 일본은 당시 어떤 상황에 처했을까?

1543년 유구국으로 가려던 포르투갈의 상인들이 규슈의 다네가섬(種子島)에 표류했다. 이어 1549년에 예수회 신부인 에스파냐의 ‘프란시스코 자비에르’가 규슈 남부인 가고시마(鹿兒島)에 들어왔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조총·화약 등의 군사기술, 조선술과 항해술·의학·천문학을 비롯한 천주교가 들어오기 시작해 변화와 발전이 빨라졌다. 또한 이는 조총 등 군사기술 이용을 불러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다. 서구문물을 최대한 활용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00년 동안의 분열 상태를 끝내고 1590년에 군사적으로 통일했다. 그는 2단계 정치적인 통일, 3단계 문화적인 통일을 추진했다. 농민들의 무기 소유를 금지하면서 신분제를 확고히 했고, 토지제도를 개선하는 동시에 다도 문화와 남만(포르투갈·에스파냐) 문화를 성행시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또한 천한 신분에서 ‘관백’을 거쳐 ‘태합’으로 변신한 자신의 야망을 확대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일본을 동아시아 세계에 알리고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거기다가 관동 지역을 비롯한 규슈 지역은 불완전한 지배상태였고, 전후의 유휴 군사력 등은 내정의 안정적인 운영에 방해가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국의 군사조직을 일원화시키고, 군사력을 자의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은 대외 전의 감행이었다. 그리고 가장 적합한 대상은 문인들이 지배하고,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던 조선이었다(윤명철, 《한민족 해양활동 이야기 2》).

그는 통일을 완성하기 전인 1585년에 관백이 될 때 조선을 공격할 의도를 보였다. 육군 병력뿐만 아니라 1586년에는 대규모의 선박건조 사업을 추진했고, 전쟁 전에는 포르투갈에서 전투력이 뛰어난 갤리선 등 함정 2척을 구입하는 시도까지 했다. 1587년에는 대마도주에게 장차 조선을 공격할 것이니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1587년 6월에는 규슈의 하카타에서 대마도의 도주에게 조선과 교섭해 조선의 왕이 입조하고, 어길 경우에는 공격한다고 전하라고 명했다. 중간자적 존재로 생활을 유지하던 대마도로는 전쟁발발을 막아야 했으므로 1588년에 조선에 사신을 파견했다. 이어 1589년에는 도주가 된 소 요시토시(宗義智)가 건너와 일본의 침공을 암시했고, 통신사의 파견을 요청했다. 하지만 조선은 거절했고, 대마도는 선봉대로 부산포에 상륙했다. 이 무렵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신부들에게 전쟁을 일으키고 조선을 공격할 의사를 표현했다(루이스 프로이스 저, 정성화 역 《임진난의 기록》).

조선 정부는 우여곡절 끝에 황윤길과 김성일을 통신사로 파견해 내정을 살피고, 침공 여부를 탐지하게 했다. 몇 달을 기다린 끝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귀국한 사신단은 귀국하는 도중 답변서를 받았다. 답변서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을 ‘태양의 아들'로 칭했고, 대명국에 들어가 정복하고 다스릴 것이며, 그때 조선이 군사행동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 내용이 있다(《선조 수정실록》). 그런데도 조정은 방어 준비를 게을리했다. 1592년 음력 4월.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20만명의 수륙군을 동원해 공격을 시작했고, 동아시아에는 7년에 걸친 국제대전이 발발했다(손승철, 《조선후기 한일관계》).

무능한 정부를 가진 조선은 어떻게 이 위기를 판단하고, 또 극복했을까? 전쟁 이후에 동아시아의 역학관계는 어떻게 변했으며, 유럽은 어떤 방식으로 동아시아 세계에 침투했을까?

윤명철 <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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