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치들의 재테크, 장기債의 시간이 온다

입력 2020-11-08 17:25   수정 2020-11-16 15:19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가 한창이던 지난 4일. 뉴욕시장에서 채권 거래 시작과 동시에 공격적인 매수세가 흘러들었다. ‘블루웨이브(민주당의 백악관 및 상·하원 장악)’ 가능성이 낮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 투자심리를 자극했다.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날 연 0.77%로 0.12%포인트 급락했다. 미 정부에서 한동안 대규모 부양책을 쓰기 어려울 것으로 본 슈퍼리치와 기관들이 ‘안전자산’ 매집에 나선 것이다.

이튿날 국내 만기 20년 이상 초장기 국고채 금리도 미국 시장을 따라 하락하며 요동쳤다. 슈퍼리치들의 재테크 수단인 장기 국고채가 최근의 부진에서 벗어나 그동안의 가치상승 흐름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금융위기 충격 땐 100% 올라
만기 10년 이상 초장기 채권은 ‘불황’을 먹고 성장한다. 2006년 처음 등장한 20년 만기 국고채가 대표적이다. 상품 출시 2년 만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이 국채를 사서 보유했다면 이자를 합친 누적 수익률은 2016년 100%를 넘어섰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11%(KB부동산지수 기준)에 그쳤다.

이후 장기 국고채는 슈퍼리치의 재테크 수단으로 떠올랐다. 초장기 국고채는 불황 때마다 예외 없이 가치가 올라 다른 자산의 손실을 만회하는 역할을 했다.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금리가 꾸준히 내리막을 걷고, 긴 만기가 가격 변동폭을 키우는 지렛대 역할을 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0년 만기 국고채 지표물(최근 발행물, 상품명 20-2호)은 지난달 말 기준 액면 1만원짜리가 9670원 수준에 거래됐다. 이달 들어서도 9600원 안팎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난 3월 발행 당시 액면가에 매수한 투자자는 3% 넘는 평가 손실을 기록 중이다. 30년물 거래 금리가 지난 10월 말 연 1.65%로, 세계보건기구(WHO)의 3월 11일 팬데믹(대유행) 선언 이후로만 0.22%포인트가량 급등했기 때문이다. 20년 만기 국고채 가격도 같은 기간 2%대 손실을 냈다.
물량 부담이 가격 끌어내려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불황에도 장기 국고채 가격이 하락한 이유는 대규모 물량 부담 때문이다. 정부가 재정지출을 위해 국고채를 마구 찍어낼 것이란 우려가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재료를 무력화했다는 분석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정부가 내년부터 연간 160조원 수준의 국고채를 발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예년보다 60조원 정도 불어난 규모다. 지난 8월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발언도 채권 투자자들을 실망시켰다. ‘물가 상승에 더 관대하게 대응하겠다’고 언급했다. 물가 상승은 미래 기준금리 인상을 유발하기 때문에 장기 채권시장의 최대 악재 중 하나다.
방향 전환 기다리는 슈퍼리치
슈퍼리치들은 아직까지 금리 움직임을 관망하는 모습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개인투자자의 국채 순매수 규모는 -30억원을 나타냈다. ‘경기 침체 속 금리 상승’이라는 낯선 상황이 투자를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극적 반전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리가 추세적 하락으로 방향을 튼다면 국채 투자자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이 경우 국채시장에도 대규모 개인 매수세가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금리가 대세 하락으로 방향을 틀기 2년 전인 2012년 국내 개인투자자의 국채 순매수 금액은 1조8000억원을 웃돌았다. 같은 해 처음 등장한 30년물은 국고채로선 이례적으로 예약판매 단계에서 물량이 동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국 경제가 결국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전망 때문이었다. 일본은 4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최근 연 0.6%대에 그치고 있다.
“지금이 매수 기회일 수도”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장기 금리 움직임을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을 주문하고 있다. 미 대선 전후 장기 금리의 상승세(초장기채 가격의 하락세)가 주춤하면서 ‘추세적인 상승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슈퍼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악재가 모두 드러난 상황에서 ‘방향 전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경기 침체를 이유로 국고채 30년물 금리가 결국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1분기 연 1.75%로 지난 10월 말 대비 0.10%포인트 올랐다가, 4분기엔 다시 연 1.50%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안재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19 영향에서 점차 벗어나면 구조적 저성장 우려가 고개를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침체가 예상보다 더 빠르고 깊다면 투자 성과는 2014~2016년처럼 다시 다른 자산을 크게 웃돌 수 있다. 2012년 말 ‘금융위기에서 탈출했다’는 착각으로 급반등하던 국내 장기 금리는 2014년부터 2년간 드라마틱한 하락세를 나타냈다. 이 과정에서 2012년 데뷔 직후 액면 1만원당 9200원 수준까지 떨어졌던 30년 만기 국고채 가격은 2016년 여름 최고 1만3500원까지 치솟았다. 이자를 포함해 4년간 총 50% 넘는 수익을 낸 대반전이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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