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연결의 욕구, 연결의 본능

입력 2020-11-08 18:06   수정 2020-11-09 00:05

불과 몇 십 년 전, 친구들 사이에는 펜팔이 유행이었다. 호기심 많은 친구 몇은 타국에 사는 여자 아이에게 사전을 뒤져가며 편지를 써 보냈고, 몇 달 뒤 답장이 왔을 때 우르르 몰려가 환호하며 편지를 돌려보았다.

아날로그는 빠르게 디지털로 변했다. 편지를 주고받던 우리는 삐삐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중전화에 하염없이 줄을 서서 기다렸고, 시티폰, 개인휴대통신(PCS), 휴대폰을 거쳐 스마트폰 시대까지 숨차게 달려왔다. 그리고 SNS와 메신저를 통해 24시간 타인과 연결됐고 소통한다.

심리학자 매슬로가 제시한 ‘5대 욕구 이론’은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분류해 낮은 단계의 욕구가 충족돼야 다음 단계의 욕구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1단계 생리적 욕구보다 더 밑에 ‘와이파이’와 ‘휴대폰 배터리’ 욕구가 있다고 한다. 모든 욕구에 앞서 와이파이에 연결돼 있지 않거나 휴대폰 배터리가 충분하지 않을 때 느끼는 불안감이 더 크다는 것을 과장해서 표현한 것이다.

연결의 본능은 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하기도 했다. 2009년 IBM 미국 뉴욕 본사에서 정보기술(IT)산업 컨설팅 리더로 일하던 때의 일이다. 애플과 구글은 각각 iOS와 안드로이드용 운영체제(OS)를 선보이며 모바일 시장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었고, 당시 휴대폰 시장의 독보적 1위 기업 노키아는 이미 심비안과 미고라는 자체 OS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노키아의 대응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핀란드 헬싱키로 출장 가서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 전날 워크숍이 돌연 취소됐고, 갑자기 노키아의 수장이 바뀌며, 마이크로소프트(MS) 출신 새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했다. 곧 노키아는 스마트폰 OS로 MS 윈도를 도입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세계 1위였던 노키아는 서서히 시장에서 사라졌다. 놀랍게도 그 빈자리를 삼성이 차지했다.

OS 최강자인 마이크로소프트와 모바일 최강자였던 노키아가 만났는데, 어떻게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얼마 후 나는 삼성전자 최고위 임원과의 식사 중에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삼성은 연결을 택했어요. 우리는 안드로이드, 윈도, 삼성 고유 플랫폼까지 모두 지원합니다.” 애플 역시 폐쇄적인 플랫폼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앱스토어’를 오픈해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앱을 등록할 수 있도록 ‘연결’을 선택했다. 노키아는 많은 개발자와 사용자가 연결돼 있는 iOS와 안드로이드가 구축한 ‘연결의 생태계’를 대적하기에 이미 늦었던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물리적인 연결이 끊겼다. 하지만 사람들은 유튜브 라이브로 함께 랜선 여행을 하고, 줌을 통해 온라인 밴드 합주로 음악을 즐기며,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연결되길 갈망한다. 연결이라는 본능을 활용하는 혁신가와 기업들은, 어쩌면 지금이 최고의 기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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