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메이플라워 서약' 400년

입력 2020-11-09 17:42   수정 2020-11-10 11:07

1620년 9월 영국을 떠난 메이플라워호는 길이 27.5m에 180t 규모의 작은 범선이었다. 승객은 종교 탄압을 피해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선 청교도와 건설노무자 등 102명. 이들에게 닥친 첫 위기는 풍랑이었다. 난파 직전까지 간 배 안에서 사람들은 간절한 기도와 종교적 신념으로 공포를 견뎠다.

두 번째 위기는 11월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닥쳤다. 풍랑으로 항로를 이탈한 배가 목적지인 버지니아주에서 북쪽으로 1000㎞나 떨어진 매사추세츠주의 플리머스에 닿자, 노무자들이 “여긴 아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금방 폭동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선상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합의한 것이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메이플라워 서약’이다. 핵심은 ‘우리의 총체적인 이익을 위해 공정한 헌법과 법률, 조례를 만들어 순종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다수의 자유 의지에 의한 정부 설립을 결정한 미국 최초의 자치 헌법이다. 독립정신의 근간이기도 하다.

1776년 공표된 미국 독립선언서는 개인의 자유를 최우선 권리로 인정하고 있다. 자유 의지를 강조하기에 개인의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다. 연방헌법에서도 권력을 입법·사법·행정으로 분산해 상호 견제하도록 했다. 이런 전통에서 세계 최초의 근대 민주주의와 미국의 정치체제가 꽃피었다.

400년에 걸친 이민 행렬과 이들을 한 데 묶는 ‘메이플라워 정신’은 최강대국 미국을 일군 원동력이다. 미 정계에는 아일랜드 혈통이 많다. 앤드루 잭슨, 해리 트루먼, 존 F 케네디, 로널드 레이건, 부시 부자(父子), 빌 클린턴 등 전직 대통령에 이어 새 대통령 당선인 조 바이든도 아일랜드 후손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독일 이민 3세임에도 반(反)이민 정책을 폈다. 이번 대선에서는 유례없는 분열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마침 바이든 당선인이 첫 연설에서 “이제 다시 서로에게 귀를 기울일 시간”이라며 “통합과 치유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바이든에게는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정치적 양극화로 얼룩진 민주주의와 치명적인 전염병, 급변하는 국제정세 등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하지만 외부 풍랑과 내부 분열을 잇달아 이겨낸 ‘메이플라워 서약’을 잊지 않는다면 미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자 ‘아메리칸 드림’의 원천이다. 오히려 편 가르기로 몸살 앓는 한국을 걱정하는 이가 많은 현실이 안타깝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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