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세상을 바꾼 백신과 치료제

입력 2020-11-10 17:25   수정 2020-11-11 00:30

아프리카는 오랫동안 ‘백인의 무덤’으로 불렸다. 말라리아를 필두로 유럽인에게 낯선 황열병, 이질, 장티푸스 같은 각종 풍토병과 전염병이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1819~1836년에 아프리카 서부 시에라리온에서 복무한 영국 군인 1843명 중 48.3%인 890명이 병사(病死)했다. 1823~1827년 중 가나의 ‘황금해안’에 발을 디딘 유럽인의 3분의 2는 살아서 돌아가지 못했다.

질병의 장벽에 가로막혔던 까닭에 유럽 제국주의는 아프리카 내륙으로 쉽게 침투하지 못했다. 유럽인의 사망률은 1820년 프랑스 화학자 피에르 펠르티에와 조제프 카방투가 키나나무에서 ‘키니네 알칼로이드’를 추출한 이후에야 획기적으로 떨어졌다. 말라리아 치료제인 ‘키니네’가 등장하면서 판이 바뀐 것이다. 1827년 상업적 생산이 시작된 ‘키니네’는 1830년부터는 일반인에게도 보급되면서 서구 열강이 열대지역 식민지를 개척하는 데 효과적인 ‘무기’가 됐다.

‘키니네’ 외에도 신약으로 무시무시한 질병을 극복하며 세계사 흐름을 바꾼 경우가 적지 않다. 1928년 영국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이 발견한 항생제 ‘페니실린’이 2차대전 도중 윈스턴 처칠 총리의 목숨을 구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례다. 결핵균을 발견한 로베르트 코흐는 치료제 ‘투베르쿨린’을 선보이며 원인을 찾아내면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었다.

사후 치료가 아닌, 예방기능의 백신이 등장한 것은 질병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제거했다. 1792년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는 우두법을 개발하며 천연두 박멸의 길을 열었다. 이후 백신이 등장한 소아마비, 콜레라, 뇌염 등은 더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그제 미국 제약사 화이자가 ‘개발 중인 코로나19 백신의 효과가 90% 이상’이라는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백신이 상용화되기까지 갈 길이 멀지만 시장의 기대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획기적인 효능의 백신을 개발한 주체가 민간 제약사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인류의 오랜 질병과의 투쟁사에서 국가기관이 획기적인 의약품을 개발한 사례는 거의 없다. 아마도 질병을 극복하겠다는 열정,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욕망보다 더 강한 신약개발 동기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제약사가 좀 더 자유롭게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 치명적인 질병 극복이라는 인류의 ‘공익’ 달성을 앞당기는 비결이 아닐까 싶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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