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당근문화가 던진 질문

입력 2020-11-11 17:12   수정 2020-11-12 00:16

“혹시 당근?” “네, 당근입니다.” 어둑해진 저녁 동네 아저씨 둘이 어색하게 물건과 돈을 주고받는다. “혹시 뭔지 아세요?” “저도 모르겠는데요.” 물건이 뭔지도 모른 채 아내 심부름으로 당근 거래를 나온 아저씨들이다. ‘당근문화’의 재미있는 일화다. 최근 만난 한 취재원도 아내 심부름으로 당근 거래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코로나 시대 TV에선 집을 정리해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다. 집안의 물건을 잔뜩 버려주니 집주인들이 “감사하다”며 눈물을 흘린다. 재택, 집콕하게 된 올해 내내 인테리어 열풍이 불었다. 코로나 불황 속에도 인테리어 시장은 컸다. 인테리어의 시작은 버리고 비우는 것. 그냥 버리자니 아깝다. ‘이참에 용돈이나 벌어볼까’란 생각에 중고마켓에 물건을 올려본다. 손쉽게 거래되는 게 신기하고, 용돈벌이도 짭짤하다. 또 올려본다. 올해 당근마켓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배경이다.

당근마켓은 코로나 와중에 ‘국민 앱’으로 성장했다. 매일 1200만 명이 평균 20분씩 접속한다. 올해 거래액 1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개인 간 거래라는 특성상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올해 2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추정이다.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자 전자상거래 공룡이 된 쿠팡도 이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고 거래 플랫폼은 자본시장에서도 매력적인 투자처가 됐다. 당근마켓과 번개장터는 벤처캐피털(VC)의 잇단 러브콜을 받고 있다. 중고나라는 유진자산운용이 인수를 추진 중이다.

중고거래 플랫폼만 성장하고 있는 게 아니다. 또 다른 중고시장이 생겨나고 있다. 가구, 의류 등 제품을 판매하는 제조업체들이 잇따라 중고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이케아가 대표적이다. 이케아는 사용하던 이케아 가구를 이케아에 되팔면 이케아가 수선해 다른 사람에게 재판매하는 ‘바이백’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에선 7월부터 광명점에서 시범 운영해왔다. 이달 전국으로 확대한다.

글로벌 패션업계에도 중고 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의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와 패스트 패션업체 H&M이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 COS 등이 이케아와 비슷한 중고 거래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달 해외에선 중고 패션잡지도 등장했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디스플레이 카피’란 이 잡지는 언뜻 보기엔 일반 패션잡지와 다르지 않다. 유명 모델들이 명품 브랜드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한 사진들이 실려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이 옷들이 ‘빈티지’ 또는 중고 제품이란 것이다.

올 들어 세계적으로 중고시장이 팽창하고 있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소득이 줄어든 소비자들이 새것이 아닌 중고라도 값싼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인식도 바뀌었다. 중고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줄었다.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그렇다. 이들은 중고시장의 큰손이다. 긴 장마, 폭염, 미세먼지 등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의식도 중고 제품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는 다가올 미래의 시간을 앞당겼다고 한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쌓아왔다면 이제 버리기 시작했다. 북유럽에서 오래전 그랬던 것처럼. 여기에 절약, 환경이란 키워드까지 더해져 중고시장을 키우고 있다. 당근마켓을 통한 지역 직거래의 확대, 글로벌 중고시장의 성장이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과잉소비의 시대는 끝났다.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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