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정권에 분노한 태국 청년들…"왕도 필요없다"

입력 2020-11-13 17:38   수정 2021-02-11 00:01


‘세 손가락 경례’는 태국 민주화 시위의 상징이 됐다. 영화 ‘헝거게임’에 등장한, 가운데 세 손가락을 위로 치켜드는 행위는 집권 세력에 대한 저항의 표시를 담고 있다. 태국 시위대는 △의회 해산과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군부 정권)의 퇴진 △새 헌법 제정을 위한 기구 구성 △민주화 운동가 탄압 중단 등 크게 세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본격화한 시위의 주도 세력은 태국의 10~20대다. 이들은 소셜미디어 등을 적극 활용하며 정부뿐만 아니라 태국 국민의 정신적 지주 격이었던 ‘왕실’까지 겨냥하고 있다. 태국에서 왕은 ‘인간과 함께 사는 신(神)’ ‘국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왕, 왕비, 왕세자를 비방하거나 위협한 자는 최고 15년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시위대는 더 이상 왕실을 존경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온라인에서 시위를 벌이며 붙이는 해시태그는 이렇다. ‘우리에게 왕이 왜 필요한가(#WhyDoWeNeedaKing).’
왕실 진화 나섰지만 역부족

4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태국의 반정부 시위는 세대 간 갈등과 분열로 격화하고 있다. 지난 8일 태국학생연합, 자유청년 등을 중심으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집회에서는 시위대, 경찰뿐만 아니라 왕실 지지파들까지 얽혀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마하 와치랄롱꼰(라마 10세) 태국 국왕이 지난 1일 왕궁 밖으로 나와 “그들(시위대)도 똑같이 사랑한다”며 “태국은 타협의 땅”이라고 언급한 지 1주일 만에 일어난 충돌이었다.

시위대와 군사 정부, 왕실 간의 갈등은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정부와 야당, 시민단체 등이 참여하는 ‘화해위원회’ 구성을 추진하고 있지만 시위대는 이미 불참 의사를 밝혔다. 400억달러(약 45조원)로 추산되는 왕실 자산에 대한 공공 감독 강화, 왕실 모독죄 폐지, 국왕의 정치 개입 금지 등의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시위를 멈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시위대와 왕당파 간 충돌이 격화하면 과거처럼 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상황 정리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태국에서는 1932년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19차례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양극화에 정부 반감 더 커져
태국 시위대는 2014년 5월 쿠데타에 성공해 6년 이상 지속된 군부 통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민간에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군부 정권은 앞서 헌법 개정을 통해 총리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해놨다. 총리 선출 투표권을 갖고 있는 양원의원(상원의원 250명, 하원의원 500명) 가운데 상원의원 모두를 군부가 지명하도록 한 것이다. 하원 500석 중 126석만 얻으면 군부가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

지난 2월에는 하원 선거에서 대중적 지지를 얻으며 제2야당으로 급부상했던 미래전진당(FFP)이 태국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당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때부터 태국의 10~20대를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 움직임이 확산됐다.

시위의 밑바탕에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도 적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태국은 극심한 양극화 사회다. 영국 가디언은 “가장 부유한 1%가 국부의 67%를 차지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한 나라”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기준 태국 기업 전체 지분의 36%가량이 단 500명에게 집중돼 있다는 조사도 있다.

태국 국민의 분노를 자극한 사건은 또 있다. 이른바 ‘레드불 스캔들’이다. 에너지 음료회사 레드불 창업주의 손자인 오라윳 유위티야(35)는 8년여 전 방콕 시내에서 페라리 스포츠카를 타고 과속하다 근무 중이던 경찰관을 치어 숨지게 했다. 그의 몸에선 코카인 성분이 검출됐지만 해외로 도피했고, 태국 검찰은 지난 7월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후 ‘태국판 유전무죄’ 논란이 거세졌다.

시위대는 국왕에 대해서도 큰 실망감을 갖고 있다.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 전 국왕은 1946년 19세에 즉위해 70년을 재위하면서 민생을 챙기는 등 큰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서거 직후인 2016년 12월 재위에 오른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은 수차례 반복된 결혼과 이혼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앞서 자신의 애완견 ‘푸푸’가 죽었을 땐 태국 군대의 ‘공군대장’ 직위를 부여하고 성대한 장례식을 여는 기이한 행동도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군주로 불리는 그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독일 등 해외에서 호화 생활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태국 국민은 막대한 국왕 재산과 왕실이 쓰는 예산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난 가중
코로나19 사태는 태국 사회의 양극화를 부채질했다. 지난 2분기 태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2%를 기록했다. 22년 만에 최악의 수치다. 오는 16일 나오는 3분기 성장률은 반등이 예상되지만, 태국 재무부는 올해 전체 성장률을 전년 대비 -7.7%로 전망하고 있다.

태국 경제의 주축인 관광산업이 타격을 받으면서 서민층 실업자도 빠르게 늘고 있다. 태국 실업자 수는 지난 4월 400만 명에서 연말에는 1400만 명 수준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사태로 올 4~9월 태국을 찾은 해외 관광객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작년 같은 기간에는 1850만여 명의 해외 관광객이 태국을 방문했다.

독일 국영방송 도이체벨레는 “코로나19 여파로 관광업이 추락했다는 사실이 지금의 시위 사태에서는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른다”며 “태국 경제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군부와 왕실, 경제적 불평등에 분노하는 반정부 시위대는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 지지를 호소하며 여론전을 펴고 있다. 인기 아이돌그룹 2PM 멤버로 태국 출신인 닉쿤도 지난달 17일 트위터를 통해 “폭력은 용인할 수 없다”며 시위대를 강경 진압한 태국 정부를 비판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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