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입력 2020-11-16 17:45   수정 2020-11-17 00:53

예전에 책을 읽다 유좌(宥坐)라는 독특한 그릇을 알게 됐다. 이 그릇은 속을 비워두면 기울어지고 중간쯤 채워놓으면 반듯하게 되고 가득 채우면 넘어진다. 그런 까닭에 현명한 임금은 이 그릇이 지극히 정성스럽다고 여겨 언제나 자기 곁에 두었다고 한다. 자신의 욕심을 경계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흔히 하는 말 가운데 ‘만족(滿足)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글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만족이란 발을 적시는 것을 말한다. 바다에 들어갔을 때 발목을 지나 허리까지 물이 차면 파도를 견디기 힘들어진다. 그러다 물이 목까지 차오르면 유좌처럼 넘어지게 돼 있다. 만족이란 목까지 차오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발목까지 물이 차면 충분하다는 말이다. 세상에 어떤 물건인들 가득 차고서 엎어지지 않는 것이 있으랴.

살다 보면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광고 문구에서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고 한 것처럼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현명한 선택에는 평소 쌓인 내면의 소양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유좌는 만족을 경계하면서도 항상 중용의 상태를 추구하라는 의미를 준다. 적절한 조화 그리고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 즉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삶에 녹아들게 해보자. 중용이란 일상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용이 어려운 것은 자칫 잘못하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모호한 상황에 빠지거나 사람들로부터 회색분자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세밀하게, 그리고 때로는 남과 다른 외로운 길을 걷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중용의 길은 어렵고 힘들기도 하고, 타인의 비난을 사기도 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파악하는 일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 것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조금 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언행이 중용에 가까운지를 아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안목을 넓히고 많은 지식을 습득하며,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기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일이 누적돼 습관이 되면 지혜가 되고, 지혜는 순간순간의 선택을 바람직하게 만든다.

중용의 도를 행할 줄 알고,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해 과감하게 물리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사람이 있다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항상 옳은 일을 추구하며 살 것이다. 이런 사람을 군자라 칭하고 이와 반대가 되는 사람은 소인이라 말한다. 그래서 소인은 너무 지나치거나 아니면 미치지 못해서 부족함에 머무르고 만다. 공자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한 중용의 덕. 그렇다면 나는 과연 군자일까? 소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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