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 업계의 '반군'…치폴레, 이번엔 '유령 주방'이다

입력 2020-11-18 09:30   수정 2020-11-19 17:00

콜드플레이의 사이언티스트란 노래가 흐른다. 초원에 돼지가 등장한다. 곧 울타리에 갇힌다. 울타리 가 늘며 공장식 사육장이 된다. 그리고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도살되고 가공돼 트럭에 실린다. 한 농부가 무언가를 깨닫고 농장으로 달려간다. 공장에서 소 닭 돼지를 꺼내준다. 그리고 ‘치폴레’라는 트럭에 싣는다. 노래 가사는 이어 진다 ‘back to the start(다시 처음으로).’


미국의 멕시칸 레스토랑 체인인 치폴레 광고다. 이 영상은 2012년 깐느광고영화제 대상을 받았다. 치폴레는 맥도날드, 버거킹 등 기존의 ‘패스트푸드 제국’에 맞서며 급성장했다. 유전자조작식품(GMO)이 아닌 현지 농산물을 사용하고 방목된 소 닭 돼지를 사용하는 ‘진정성 있는 음식(food with integrity)’을 그들의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식당에서 사용되는 냅킨마저 재생지를 사용했다. '산업적 사육과 도축'에 대한 저항문화가 치폴레 비즈니스의 기반이었다. 윤리적 소비를 중시하는 미국의 X세대들과 밀레니얼 세대는 환호했다. 2020년 9월 기준 미국, 캐나다, 유럽 등지에 2700개의 매장을 갖고 있다.

주가는 이같은 '기업의 영혼'에 대한 평가다. 2006년 1월 42달러로 상장한 주가는 2015년까지 꾸준히 올랐다. 2015년 7월에는 750달러를 기록했다. 약 10년만에 주가가 18배 뛰었다.
○위기는 운명
하지만 치폴레는 곧 침체기에 빠져든다. 2015년 10월 치폴레를 이용한 고객들이 잇따라 식중독 증세를 나타냈고 캘리포니아에주에서는 고객 200명 이상이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등 위생 논란이 이어졌다.

그들을 키워준 '식품 안전'이란 슬로건 때문에 충격도 더 컸다. 주가는 반토막났고 2015년 45억달러였던 매출은 2016년 39억달러로 줄었다. 언론들은 “치폴레는 끝났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치폴레는 무너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빨리 위기를 극복했다. 비결은 철저한 피드백이었다. 치폴레는 2018년 2월 경쟁사인 타코벨에서 브라이언 니콜을 영입해 대표이사직에 앉혔다. 니콜 치폴레 대표이사는 철저한 위생검사로 매장 65곳을 폐쇄했다. 매장 몇 곳을 묶어 재료를 유통시켜 매장마다 재료 상태가 달라지는 것을 막았다. 현지 농장에서 재료를 공급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매달 고객 중 일부를 초청해 농장을 방문하게 했다. ‘진짜(for real) 캠페인’도 진행했다. 광고에서 길고 복잡한 성분 목록 대신 양파, 아보카도, 피망 등 모든 사람들에게 익숙한 51가지의 재료를 보여주며 진짜 재료들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성장에 이은 회복이라는 두번째 신화를 완성했다.
○세변째는 디지털
치폴레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시련은 디지털화다. 치폴레는 온라인 및 모바일 주문에도 많은 비용을 투자했다.

2018년까지 치폴레의 디지털 매출은 약 5억달러로 전체 매출의 9%에 불과했다. 새로운 CEO는 타코벨에서 모바일주문 및 결제, 키오스크 주문 등을 확대한 경험을 치폴레에도 적용시켰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음식을 주문했을 경우에는 별도의 창구에서 받아갈 수 있도록 했고 드라이브스루 서비스도 처음 도입했다. 그간 소극적이었던 TV 광고와 SNS 광고 비중도 높였다. 2018년 4월부터 주가가 반등하기 시작했고 2019년 5월에는 직전 최고가를 회복했다. 매출도 2017년 45억달러, 2018년 49억달러, 2019년 55억달러로 꾸준히 늘었다.

위기대응능력을 보여준 치폴레가 또 한번의 변화에 나섰다. 디지털화다. 치폴레는 14일(현지시간) 최초의 디지털 전용 레스토랑을 뉴욕 하이랜드 폴스에 열었다. 고객들은 자체 앱이나 웹사이트, 혹은 우버이츠 그럽허브 등 배달어플을 통해 음식을 주문한다. 현장에서 주문할 수는 없다. 주문한 음식은 로비에서 수령해가면 된다. 로비에는 기존 치폴레 매장의 소리와 냄새가 그대로 나고, 주방 모습도 볼 수 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디지털 소비 전환에 맞춰 외식업계 중 해당 분야 선두주자로 나섰다는 평가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외식업계에서는 온라인주문을 잘 소화하는 ‘보피스(BOPIS·Buy-online-pickup-in-store)’기업만이 살아남았다. 치폴레가 디지털에서 활로를 찾은 이유다. 치폴레도 ‘유령 주방(고스트 키친)’을 두고 온라인 주문만을 소화하도록 했다. 오프라인 매장의 주문과 겹칠 일이 없으니 더 신선한 음식을 빠르게 제공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고객들의 대기시간은 기존의 3분의 1로 줄었다. 새로운 디지털 매장에서도 이 방식이 적용된다.


커드 가너 치폴레 최고기술경영자(CTO)는 “3분기 온라인을 통한 매출이 작년대비 세 배 증가하는 등 코로나19를 계기로 디지털 수요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며 디지털 레스토랑을 만든 배경을 설명했다. 디지털 레스토랑은 기존 레스토랑들이 비싼 임대료 등을 이유로 진출하지 못했던 지역에서도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도심형 매장을 늘릴 수 있는 것이다.
○기초는 문화
문화 혁신 작업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치폴레 내에는 ‘문화 사냥꾼(culture hunters)’이라는 조직이 있다. 치폴레의 충성도 높은 고객, 즉 팬층을 확보하고 관리하는 조직이다. 코로나19로 봉쇄령이 내려지자 이들은 팬들과 치폴레를 연결할 방법을 고민했다. 디지털 점심파티인 ‘치폴레 투게더(Chipotle Together)’를 생각해냈다. 유명인이 주최하는 점심식사에 팬들이 참여해 줌(Zoom)으로 서로 얼굴을 보며 식사를 하는 행사다. 10달러 이상 주문하는 고객에게 무료 배송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chi-vote-le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판매하며 투표를 장려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성장
치폴레는 3분기 매출이 작년보다 14.1% 증가한 16억 달러를 기록했다. 동일매장의 매출은 작년 동기 대비 8.3% 늘었다. 특히 디지털 매출은 작년보다 202.5% 증가한 7억 7640만 달러로 분기 매출의 절반 가량을 차지한다. 회사측은 올해 디지털주문이 25억달러를 넘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소고기 등 원재료 가격이 상승했고 그럽허브 우버이츠 등 배달업체에 줘야 하는 수수료 문제도 있어 영업이익은 18.6% 감소한 8024만달러에 그쳤다.

아직 디지털 부문에 대한 기대가 주가에 온전히 반영되지는 못한 상태다. 3분기 실적발표일(10월 21일) 대비 주가는 7.76% 떨어졌다. 현재 주가는 연초이후 47% 상승한 1260달러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치폴레의 실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유통업 리서치회사 블룸리서치는 “소비자들은 더 이상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험을 구분하지 않는다”며 “치폴레의 첫 번째 디지털 매장은 우리가 소매점, 식료품점 및 패스트 캐주얼 다이닝에서 더 자주 보게 될 트렌드의 훌륭한 예”라고 평가했다. 이어 “소비자가 편리한 제품과 서비스를 찾을수록 상점과 식당은 물류 기능을 제공 할 수밖에 없다”며 “상점은 픽업 및 유통 센터가 되고 레스토랑은 픽업 지점 및 주방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투자은행 파이퍼샌들러는 16일 목표주가를 1514달러에서 1745달러로 높였다.

치폴레의 선제적인 움직임 때문에 버거킹, 쉐이크쉑, 스타벅스 등 다른 음식료 체인 기업들의 디지털화도 본격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버거킹과 쉐이크쉑은 드라이브스루 레인을 추가한다고 밝혔고 스타벅스도 내년까지 모바일 주문 픽업 전용 매장을 더 만들 계획이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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