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호의 논점과 관점] 경제원칙 무시하는 공공정책들

입력 2020-11-17 17:59   수정 2020-11-18 02:37

신(新)외감법(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도입 2년 만에 국내 기업의 외부감사 비용이 70% 폭증했다는 뉴스는 놀랍기도 하지만, 한편 씁쓸하다. 감사 비용이 두 배 이상 늘어날 거란 예상이 현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부담이 몇 배나 더 크고, 적자기업의 감사비용도 예외 없이 급증하는 등 현장의 혼란은 상상을 초월한다. 회계투명성도 중요하지만 ‘배급제’(감사인 지정제)를 실시하니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신외감법 외에도 세입자를 보호한다며 되레 전세대란을 부추긴 임대차법, 보유세 폭탄을 몰고 온 주택공시가격 반영률의 급격한 인상 등 이슈에 공통점이 있다.
이분법으로 갈라치는 경제정책
‘기업은 틈만 나면 회계부정을 일삼는 집단’ ‘집주인은 불로소득을 챙기는 기득권자’라는 식의 프레임이다. 기업과 집주인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들의 대응에 따라 정책효과가 달라질 수 있는데도 정책 훼방 세력으로 여겼는지 결정 과정에서 이들의 의견을 구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무리하다 싶은 이런 정책에도 배경은 있다. 신외감법의 경우 2010~2014년 5조원대에 이르는 회계부정을 한 대우조선해양 사건이 결정타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안정을 되찾던 한국 경제에 갑작스레 회계리스크를 키웠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차단을 위해 당국이 칼을 빼들 수밖에 없었다. 올 들어서도 잡히기는커녕 더 악화하는 전세난이 임대차법 손질로, 자고 나면 뛰어오르는 집값에 대한 무주택 서민의 상실감과 박탈감이 공시가격 현실화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이 일도양단하듯 너무 쉽게 마련된 감이 없지 않다. 공공선택이론의 창시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1986년)인 제임스 뷰캐넌이 강조한 것처럼 공공정책 결정에선 사회 전체의 비용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당국의 인식은 훨씬 못 미친다. 정책 반대자, 예상 못한 변수로 인한 부작용인 ‘외부비용’과 적정한 찬성률을 이끌어내는 데 들어가는 유·무형의 사회적 비용인 ‘의사결정비용’의 합(合)이 최소가 되는 지점을 찾는 게 공공정책의 최선(最善)이다. 찬성하는 사람 숫자가 적을 때는 외부비용은 높고 의사결정비용은 낮지만, 찬성률을 끌어올릴수록 외부비용은 낮아지고 의사결정비용은 높아진다.
사회총비용 낮출 접근법 필요
결국 ‘U’자 형태의 곡선이 된다. 이 그래프의 최저점에서 유의미한 찬성률을 찾고, 그 수준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게 경제정책의 목표이자 원칙이다. 그런데도 기업에 ‘회계개혁에 따르라’고만 하면 의사결정비용은 줄어들지만 감사비용 폭증 등 외부비용은 커지게 된다. 임대차법, 공시가 인상과 관련해선 집주인과 세입자의 분쟁 급증, 전셋집 품귀와 전세금 상승, 세입자 위로금 지급, 3년 새 네 배나 오를 보유세 폭탄 등이 외부비용이다. 반대론을 차단하려다(의사결정비용을 줄이려다) 외부비용을 더 키운, 경제원칙에 반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지난주 정부는 택배기사 과로 방지책의 후속으로 택배비 인상을 위한 사회적 합의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 74%가 택배 근로자 처우 개선을 위한 가격 인상에 동의하면서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나 과연 택배비가 두 배 오르는 현실을 맞닥뜨려서도 동의가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정책의 경제적 부담을 오롯이 지게 될 집단을 먼저 설득하고, 이들의 반응에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경제원칙을 무시한 공공정책은 빵점짜리 정책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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