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된 사랑에 대한 복수심…꿈 속에서라도 그녀를 정복하고 싶었나

입력 2020-11-19 17:28   수정 2020-11-20 03:06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어네스트 하트만은 저서 《꿈과 악몽》에서 꿈이 개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창의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수면과 꿈에 대한 그의 연구에 따르면 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몽으로, 예술가와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 일반인에 비해 악몽을 더 자주 꾸는 것으로 밝혀졌다. 왜 악몽이 창의성과 관련이 있을까. 위기나 절망적 상황, 심각한 외상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과 공포 등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이 악몽을 꾸게 된다. 정서적으로 민감한 사람일수록 감정에 압도당하며 강렬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악몽을 자주 꾸게 된다는 것이다. 스위스 출신 영국화가 헨리 푸셀리(Henry Fuseli·1741~1825)는 영감의 원천인 꿈을 중시하고 미술에서 최초로 악몽을 그림에 표현한 업적을 남겼다.

젊은 미녀가 악몽을 꾸는 장면을 그린 이 작품이 1782년 런던 로열아카데미 전시회에 첫선을 보이자 영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악몽을 주제로 한 그림은 처음인 데다 성적 욕구와 공포가 결합한 강렬한 이미지는 성에 대한 억압과 금기가 강했던 당시 영국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침대에서 깊이 잠든 미녀의 모습은 숨이 막힐 정도로 관능적이다. 게다가 미녀의 배 위에 추악한 괴물이 올라타고 있다. 괴물은 서구 전설에 등장하는, 꿈속에서 여성의 몸을 강제로 탐하는 악마 마라 또는 ‘인큐버스’다.

더욱 충격적인 이미지는 붉은 커튼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잠자는 미녀를 훔쳐보는 말(몽마)이다. 몽마는 북유럽 민속에 나오는 악령으로, 잠자는 여자의 가슴 위에 올라타고 음란한 꿈을 꾸게 한다. 한눈에도 백마가 발정 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말의 귀는 발딱 서 있고, 입은 벌어져 있으며, 콧구멍이 벌름거리는 데다 욕정으로 두 눈알마저 희뿌옇게 변했다.

성적 충동이 불러일으킨 흥분과 쾌락, 공포와 두려움, 혐오와 죄의식이 투영된 그림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푸셀리의 친구이자 전기작가인 존 놀스는 ‘악몽’이 ‘유례를 찾기 힘든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기록했다. 런던의 인구가 약 75만 명이었던 당시 5만5000명이 넘는 관람객을 끌어들였을 만큼 전시는 흥행의 진기록을 남겼다.

푸셀리는 ‘악몽’에 대한 최초의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었을까. 영감의 원천은 꿈과 실패한 사랑이었다.

푸셀리는 1779년 어느 날 변심한 연인 안나 란돌트를 자신이 성적으로 괴롭히는 꿈을 꾸었다. 그는 그 전해 안나를 만나 열정적인 사랑에 빠져 청혼했지만 그녀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로 결혼 승낙을 얻는 데 실패했고 이후 안나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푸셀리는 실연의 상처와 배신감으로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던 시절 부도덕한 꿈을 꾸었고 그 강렬한 이미지를 그림에 담았다. 그런 이유에서 미술사학자들은 잠자는 미녀는 사랑을 배신한 안나, 미녀를 공격하는 악마는 질투와 복수심에 불타는 푸셀리라고 해석한다. 화가의 성적인 좌절과 복수심이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라는 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캔버스 뒷면에 그려진 젊은 여성의 미완성 초상화다. 그림의 모델은 변심한 연인 안나로 추정된다.

좌절된 성욕과 억압된 폭력성이 나쁜 꿈의 원인이라는 사례를 제시한 ‘악몽’은 고딕 공포(공포와 로맨스의 결합)의 상징적 이미지가 됐고 시각예술뿐 아니라 정신의학, 문학 등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미술에서는 윌리엄 블레이크, 제임스 길레이, 살바도르 달리, 만 레이, 문학에서는 메리 셸리가 쓴 공포소설 고전 《프랑켄슈타인》, 공포문학의 거장 에드거 앨런 포의 대표 단편 《어셔 가의 몰락》이 탄생하는 데 기여했다.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억압된 욕망이 무의식의 본질이며 꿈은 의식이 통제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이라는 이론을 정립한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꼽힌다.

독일의 과학 칼럼니스트 슈테판 클라인은 꿈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한다. ‘꿈꾸는 동안 우리의 능력이 확장되고 뇌가 변화한다. 꿈은 우리가 누구인지 또 어떤 가능성이 있는 존재인지 보여준다.’ ‘악몽’을 감상하면서 무의식이 보내는 마음의 신호인 꿈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장 >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