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꼭대기서 나뉜다…높은장선이, 깊은장선이

입력 2020-11-19 17:23   수정 2020-11-20 02:58


이런 촌구석까지 뭐 볼게 있다고 왔어? 작은 개울을 경계로 충남 금산과 충북 영동, 2도2군으로 나뉘는 마을. 전기는 영동에서, 전화선은 금산에서 들어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다른 도를 넘나들었지만 한 마을 사람으로 평생을 살았다. 낯선 이방인 눈에만 경계의 금이 보일 뿐.

여기 독특한 환경의 두 마을이 있다. 한 마을은 절벽 같은 산비탈에 달라붙은 산꼭대기에 있는 마을이고, 다른 한 마을은 마을 한가운데를 흐르는 작은 도랑을 경계로 충남 금산군과 충북 영동군, 2도 2군으로 나뉜 마을이다. 공교롭게도 두 마을의 지명은 모두 ‘장선이’다.
산꼭대기 오지 마을 ‘높은장선이’
닮은 듯 다른 두 장선이 마을은 1㎞의 거리를 두고 붙어 있다. 오르막길을 올라 먼저 만나는 높은장선이 마을은 산꼭대기에 있으며, 높은장선이에서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을 한없이 내려가면 깊은장선이 마을이 있다. 높아서 ‘높은’, 골짜기 깊은 곳에 있어 ‘깊은’이라는 지명이 앞에 붙었다. 높은장선이 마을이 먼저 생겨 옛장선이라고도 부른다.

장선이 마을 들목은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다. 금강(錦江)을 가로지르는 가선교를 건너 승용차 한 대 지나다닐 만한 좁은 도로를 따라 한없이 산을 오르면 포장길이 끝나는 곳에 마을이 있다. 찾아가는 길에 대한 표지판도 없고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마땅치 않다. 천년고찰 영국사(寧國寺)를 품은 천태산 뒤편으로, 오르막길 왼쪽은 장선이 계곡이다. 가선교에서 2㎞ 정도 오르면 한두 집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여기가 바로 영동 땅의 높은장선이 마을이다. 현재는 6가구, 채 10명이 안 되는 주민이 살고 있다.
“이런 촌구석까지 뭐 볼 게 있다고 왔어요?”
된서리를 맞은 느티나무 잎이 하루아침에 힘을 잃고 우수수 떨어진다. 쓱~쓱~ 마당에서 대빗자루질을 하고 있던 한상섭 씨(86)가 낯선 방문객을 맞는다. 한씨 집 마당과 마을 곳곳에는 당신이 직접 캐다 심었다는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다. 특히 마을 입구 느티나무는 원래 두 그루였는데 나뭇가지가 서로 껴안듯이 꼬이면서 하나가 됐다.

군대 생활 3년을 제외하고 줄곧 높은장선이에서 살았다는 한씨는 10여 년 전에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살고 있다. 금강에 다리가 없어 먼 길을 돌아다니고, 찻길이 없어 산을 넘어 다녔던 옛 이야기 보따리를 한가득 풀어놓는다.

“말도 말아. 먹고사는 것이야 크게 부족함은 없었지만 제일 힘들었던 것이 아이들 교육 문제였어. 양산면에 방을 얻어 초등학교 때부터 자취를 시켰으니까. 우리집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야. 다른 집은 금산(군) 제원(면)까지 왕복 60리를 걸어 다녔어.”

10년 전에 놓인 금강을 가로지르는 가선리 다리가 없을 땐 낮은 잠수교를 건너다녔다. 그 전에는 먼 길을 돌아서 걸어 다니거나 물이 얕은 곳만 골라 건너다녔다. 겨울에는 얼음이 깨져 긁히고 피멍이 들기도 했다. 비만 오면 물이 불어 고립되기 일쑤였고, 심지어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은 자식들이 물이 불어 건널 수 없어 강을 사이에 두고 얼굴만 바라보고는 각자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한씨의 회상은 한없이 이어질 태세다.
금산과 영동으로 나뉜 ‘깊은장선이’
높은장선이에서 고개를 넘으면 깊은장선이다. 말 그대로 깊숙이 들어 앉아 있는 지형으로, 천태산 바위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처져 있는 아늑한 분위기로 마치 요새와 같다. 마을 한가운데로 도랑이 흘러 깊은 산골짜기에 있으면서도 밭농사보다는 논농사가 많았다. 이 덕분에 산 아랫마을 못지않게 풍요로운 시절을 보냈다. 마을에서 제일 고령자인 황의선 씨(93)는 “추수철에는 아랫동네 사람들이 우리 동네까지 일하러 왔어. 그만큼 농토가 많았지”라고 회상했다.

깊은장선이는 마을 한가운데 도랑을 기준으로 서쪽은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이고, 동쪽은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다. 많을 땐 20가구도 넘었으나 현재 금산 땅에 두 가구, 영동 땅에 세 가구가 산다. 눈에 보이는 집은 열 가구 남짓 되지만 대부분이 비어 있다.

행정구역이 다르면 여간 불편한 게 많았을 법도 하지만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 대부분은 “우린 그런 거 모르고 살았어요”라고 말한다. 전기는 영동에서, 전화선은 금산에서 들어왔다. 과거 아이들 학교도 형편에 따라 영동군 양산에서 자취하거나, 금산군 제원까지 걸어 다니기도 했다. 국가가 필요에 의해 둘로 금을 그어 놓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행정구역의 의미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다른 도(道)를 넘나들면서 한 마을 사람으로 평생을 살았다. 낯선 이방인 눈에만 경계의 금이 보일 뿐.

깊은장선이 사람들은 가선리 다리가 개통되기 전에는 마을 뒤 임도를 타고 금산 쪽을 오가기도 했다. 급경사 오르막 구간 몇 군데를 제외하고 대부분 먼지 폴폴 나는 흙길이다. 늦가을 정취를 즐기며 걷기에 좋은 길이다.

■ 먹거리와 숙박

마을은 산 위에 있지만 산 아래로는 금강이 흐른다. 장선이 마을 들목인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에는 수십 년 전부터 성업 중인 가선식당을 비롯한 어죽집이 여럿 있다. 주 메뉴는 어죽과 도리뱅뱅이로, 스산한 늦가을 여행길에 속을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별미다. 장선이 마을 들목인 가선교 다리 건너에 장선골 산장에서 숙박할 수 있다.

■ 가볼 만한 곳

금산 보석사와 영동 영국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행나무가 있다. 뚝 떨어진 기온에 은행잎은 모두 떨어졌지만 만추의 서정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보석사에서는 아직 떠나지 못한 가을빛을 만날 수 있다. 전나무와 단풍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붉은 단풍과 초록의 조화가 아름답다.

금산, 영동=글·사진 최상석 여행작가 ozikore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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