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불량 제로' 만든건 데이터 전문가…'디지털 협업'이 R&D 완성

입력 2020-11-19 17:46   수정 2020-11-27 18:38

“앞으로 모든 회사는 인공지능(AI) 기업이 될 것이다. AI 기반 기술 플랫폼 구축이 경쟁 우위의 기본이다. 시장 기회를 빠르게 포착하고, 위기에 신속히 대응하는 것은 기술 플랫폼에 달렸다.”

■ 아빈드 크리슈나 IBM CEO, 2020년 5월 5일 ‘IBM 씽크 디지털 2020’ 기조연설


독일의 철강설비 엔지니어링 기업 SMS는 올초 ‘데이터 챌린지’를 열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머신러닝을 철강 공정에 도입해 생산량을 늘릴 방안을 찾기 위한 행사였다. 독일 명문대에서 데이터 과학을 전공하는 학부생과 대학원생 25명이 참여했다. 철강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데이터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이 내놓은 결과물은 놀라웠다. 철강업계 전문가들이 수십 년간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두 달 만에 풀어냈다. 철강 주조 과정에서 불량품을 빠르게 잡아내는 알고리즘을 개발한 것이다. 미국의 한 철강회사 공정에서 나온 3만여 개 데이터를 활용해 불량품을 잡아내는 정확도를 100%까지 높였다. 철강업계에선 현장에 적용하면 비용 감소, 탄소 절감 등의 효과로 이어질 ‘혁신적 성과’라는 평가나 나왔다. SMS는 “젊은 데이터 과학자들의 혁신적 접근은 우리에게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열린 혁신과 디지털의 만남

기업의 연구개발(R&D)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R&D를 외부 전문가에게 적극 개방해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핵심은 ‘디지털’과 ‘오픈 이노베이션’이다.

과거 기업의 R&D 활동은 비슷했다. 책임자 아래 연구원들을 배치하고 필요한 기술을 개발했다. 부족하면 대학 연구소 등과 협업했다. 이런 방식은 핵심 기술의 외부 유출 차단, 신속한 의사결정 등의 측면에서 그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기술 개발’은 가능해도, ‘기술 혁신’은 어렵다는 게 한계로 지적됐다.

오픈 이노베이션이 해법으로 떠올랐다. 헨리 체스브로 UC버클리 교수가 2003년 처음 제시한 오픈 이노베이션은 R&D 과정에서 기업이 보유한 내부 성과를 외부에 공유하고, 필요한 기술을 외부에서 끌어다 쓰는 게 핵심이다.

이후 다양한 방식의 오픈 이노베이션이 시도됐다. 구글은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2005년 스타트업 인수를 통해 개발해냈다. 샤오미는 사용자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미펀’으로 불리는 샤오미 사용자 수백만 명이 의견을 내면 이를 제품에 반영해 대박을 터뜨렸다.
대세가 된 오픈 이노베이션
최근 오픈 이노베이션은 AI, 딥러닝, 클라우드 등 디지털 신기술과 만나 다양한 분야에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독일 제약사 머크와 미국 빅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가 2018년 공동으로 설립한 데이터 플랫폼이 대표 사례다. 제약사들은 보통 항암제 등 신약을 개발할 때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 데이터가 많을수록 신약의 효능을 확실하게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크도 임상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연간 수조원을 쓴다. 신약 효과 검증에 필요한 100명의 임상 데이터 확보에만 수백억원이 든다. 외부 임상 데이터는 꼭 맞는 것을 찾기 어려운 데다 데이터 간 호환이 불가능해 활용하지 않았다. 팔란티어는 외부 데이터 활용에 대한 머크의 고민을 ‘오픈 플랫폼’으로 해결했다. 우선 필요한 데이터가 이 플랫폼에 대량으로 들어왔다. 머크와 팔란티어, 머크 협력사, 바이오 벤처, 정부 등 데이터가 필요한 곳은 모두 참여했다. 수많은 데이터 중 꼭 필요한 데이터를 찾아내는 것은 팔란티어의 빅데이터 기술로 해결했다. 주로 신약 후보물질에 관한 임상 데이터였다. 글로벌 제약업계는 머크와 팔란티어가 시도한 새로운 유형의 R&D 협업이 어떤 성과를 낼지 주목하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TSMC가 만든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도 비슷한 사례다. TSMC와 R&D 분야에서 협력하고 싶은 회사라면 제한 없이 이 플랫폼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 TSMC는 여기에 AI 딥러닝 기술을 적용, 자사에 꼭 필요한 기술을 선별해 활용하고 있다.
핵심 데이터 외부 제공…‘금기’도 깨
국내 기업도 디지털 기반 R&D에 적극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5월 KAIST와 AI 분야에서 전략적으로 협업하기로 했다. 반도체 제조 현장 데이터를 외부에 처음 공개했다. KAIST 학생들의 창의성을 R&D에 적극 도입하기 위해 그동안의 ‘금기’를 깬 것이다. 9월에는 산업용 AI 기업 가우스랩을 설립했다. 공정 관리, 수율 예측 등에 AI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GS홈쇼핑은 벤처기업의 혁신을 사내에 적극 이식하고 있는 사례로 꼽힌다. 스스로의 혁신을 위해 배울 점이 있는 기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기업은 800여 곳, 금액은 4300억원에 달한다. 디자인 상품 쇼핑몰 ‘텐바이텐’, 중고거래 플랫폼 ‘헬로마켓’ 등 주로 유통 분야 기업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벤처기업들의 디지털 역량을 R&D에 접목하기 위해 투자라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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