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몇 글자 끄적여주세요. ‘능력은 있지만 이 일엔 적합하지 않다’ 같이 늘 쓰는 말 있잖아요. 세 번 거절당해야 생활보조비를 받으니깐.”
화려한 저택의 복도에 멀끔히 차려입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온갖 학위와 경험을 자랑하는 이들은 모두 일을 찾으러 온 구직자다. 면접장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장애인을 친형제처럼 생각해서’와 같은 고상한 말을 늘어놓는다. 그 사이 펑퍼짐한 청바지에 가죽점퍼를 입고 온 드리스(오마 사이 분)가 있다. 드리스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일자리가 아니라 실업급여. 구직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출해야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순서를 무시하고 새치기해 덜컥 면접장 안으로 들어간 드리스는 시간이 없으니 빨리 사인이나 해달라고 말한다.
간병인을 뽑는 면접장에 오면서도 드리스는 필립의 상태에는 관심도 없었다. 전신마비 장애인에게 “왜 지금 바로 서명을 못 해주냐”고 반문할 뿐이다. “사인은 해줄 테니 내일 다시 오라”는 말에 다음날 다시 필립의 집을 찾은 드리스는 놓여 있던 서류를 들고 나간다. “늘 그렇게 도움만 받으면서 거저먹고 사는 거 양심에 안 찔리나?”라는 필립의 질문에 “안 찔리는데, 왜요?”라고 시큰둥하게 답한다. 필립이 “‘2주 안에 짐 싼다’에 내기 걸지”라는 말 한마디가 드리스의 승부욕을 건드린다. 각각 너무도 다른 두 1%의 우정은 이렇게 시작한다.
드리스는 전형적인 실업보험의 실패 사례다. 실업보험의 취지는 정부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고된 사람들이 다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수당을 지급해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런데 드리스처럼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는 않고 실업급여에만 의존하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한다. 새로운 직장을 가지는 순간 끊기는 실업급여가 되레 새로운 일자리를 열심히 찾지 않게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드리스를 ‘실망 실업자’(구직 단념자)라고 부른다. 실망 실업자는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돼야 하지만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한다는 실업자의 조건에 맞지 않아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실업률 통계에서도 빠진다. 10명의 청년 실업자 중 5명이 상반기 공채 결과에 실망한 나머지 구직활동을 멈추고 ‘머리를 식히러’ 장기간 여행을 떠났다면? 다음달 청년 실업률은 절반으로 떨어지게 된다.
전통적인 생산 이론에서는 이를 ‘수확 체감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수확 체감의 법칙은 <그래프>처럼 기존에 자본 투입량이 적은 상황에서 자본 한 단위를 투입하면 노동의 산출량이 커지고, 자본 투입량이 이미 많은 상황에서는 자본 한 단위를 추가로 투입해도 산출량의 증가폭이 작다는 것을 말한다. 교육 등 인적 자본 투입이 적었던 드리스에게는 미술 상식도 큰 산출량을 주는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만일 드리스가 고학력자이고 면접을 보러 간 곳이 택배회사가 아니라 로펌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송영찬 한국경제신문 기자 0full@hankyung.com
②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도 실업률을 계산할 때 포함시켜야 할까. 이 경우 전업주부 등 취업 의사가 없는 이들도 포함시킬 수 있으므로 제외하는 게 맞을까.
③ 수확체감의 법칙을 감안할 때 교육 등 인적 자본의 적절한 투입량은 어느 정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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