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규제 3법’으로 경제계의 불만이 쏟아져나오는 가운데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을 보장하는 미국 법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을 보장하고 있어서다. 차등의결권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상법 개정을 통해 지분만큼의 의결권 행사까지 막으려는 한국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여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엔 감사위원 중 최소 한 명 이상을 이사와 분리해 선출해야 하며, 이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해 총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뉴욕거래소는 1994년부터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 기관투자가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이 제도를 도입한 미국 상장사는 242개사에 이른다. 특정 주식에 의결권을 여러 개 부여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알파벳처럼 주당 10개의 의결권을 부여한 곳이 151개사로 가장 많다. 가장 많은 차등의결권을 부여한 회사는 벅셔해서웨이다. 창업자인 워런 버핏은 주당 1만 개의 의결권을 부여한 주식 36.5%를 소유하고 있다.
차등의결권에 대한 미국 투자자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차등의결권이 경영 성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아서다. 미국에서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상장사의 매출은 전체 상장사 평균의 1.6배, 영업이익은 1.7배에 달한다. 경영권에 대한 걱정 없이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투자 결정을 과감하게 내린 결과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국에서 차등의결권은 ‘그림의 떡’이다. 현행 상법은 1주 1의결권을 원칙으로 한다. 지난 10월 비상장 벤처기업에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는 방안이 발표됐지만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다. 상장 후 3년이 지나거나 자산 총액이 5조원 이상인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편입되면 복수의결권이 사라진다.
한국 기업은 벤처캐피털을 전면에 내세우는 구글의 확장 전략을 벤치마킹하기 힘들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회사가 GV, 캐피털G와 같은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두는 것은 불법이다. 정부가 최근 일반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보유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독소조항이 상당하다.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를 막기 위해 지주회사가 지분 100%를 소유한 자회사 형태로만 CVC를 설립할 수 있도록 했고, CVC 차입 한도도 자기자본의 200%로 제한하고 있다.
벤처캐피털이 투자했던 스타트업을 인수해 계열사에 편입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벤처캐피털은 국내 계열사 주식을 취득할 수 없고 의결권 행사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려면 계열사가 되지 않는 지분율 30% 범위 내에서만 스타트업에 출자해야 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법에 명시하고 대부분 문제를 시장에서 해결한다”며 “구글과 같은 혁신 기업을 키우려면 기업과 관련한 규제를 더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형석/이수빈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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