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알못] 인스타그램 음란 메시지 신고…경찰만 믿으라더니

입력 2020-11-25 11:35   수정 2020-11-25 14:00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는 성폭행 피해를 당한 딸의 사적 복수를 위해 인생을 건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다. 현실에서 성범죄 피해자는 오히려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꽁꽁 숨어버리고 가해자는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라며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간다. 당연히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이에 피해자는 더욱 치가 떨릴 수밖에 없다. 여기 하루아침에 성범죄 피해자가 된 딸을 위해 직접 나선 아버지가 있다. 그는 공권력과 법의 허술함을 참을 수 없어 CCTV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고 청와대 국민청원 글을 통해 전했다.

중학교 3학년생 딸을 둔 아버지 A 씨는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서야 딸이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성적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딸 B 양에게 처음 DM이 온 것은 지난 11월 6일. '너를 지켜보고 있다', '강간하겠다', '성폭행해서 임신시켜 버리겠다'는 메시지는 물론 자위행위를 하는 영상까지 전송됐다.

A 씨와 B 양을 더욱 경악하게 한 것은 가해자가 딸의 학교는 물론 학교 선생님 이름, 매점, 자주 다니는 길, 근처 학원까지 소상히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의 장난으로 생각했던 B 양은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DM에 참을 수 없어 9일 학교 선생님에게 상담 요청을 했고 이런 사실이 학부모에게 전달이 된 것이었다.

A 씨는 10일 오전 일찍 해당 관할 경찰서 사이버 수사대에 가서 사건 접수를 했다.

사이버수사대 측은 "인스타그램(외국사이트)에 협조 요청을 받는데, 최소 2~3개월은 걸린다. 절차가 있기 때문에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학교에서는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학교를 며칠 쉬어도 된다고 했지만 인스타그램으로부터 협조 요청을 받는 2~3개월 동안 딸을 집에만 있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A 씨는 가해자 C 씨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찬찬히 들여다 봤다.

메시지 중에는 자신의 차량 내비게이션 사진도 있었다. 사진에는 날짜, 시간, 위치까지 찍혀 있었는데 A 씨는 그 정보들을 기반으로 사진이 찍힌 현장을 무작정 찾아갔다.

차량 관련 일을 하던 A 씨는 사진 속 차량의 에어컨, 기어봉 등을 통해 차종을 특정지을 수 있었다.

현장에 갔더니 방범용 cctv와 그 앞 식당에 식당용 ccvt가 설치돼 있었다.

경찰서에 문의를 하니 경찰이 동행해야 cctv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A 씨는 동네 파출소에 가서 상황 설명을 하고 같이 식당에 가서 cctv로 차량번호 및 C 씨가 차량에 탑승하고 내리는 영상까지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 때문에 자료는 경찰이 확인했다.

동행한 경찰은 "개인정보 때문에 담당 형사가 배정되면 그쪽 경찰에게 정보를 이관하겠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A 씨는 신고를 접수한 사이버수사대를 다시 찾아 "차량 번호를 확인했으니 빨리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경찰 측에서는 "아버님이 이렇게 직접 돌아다니면서 찾을 필요 없습니다. 경찰을 믿으시면 됩니다"라고 안심시켰다.

A 씨는 "2~3개월 기다리는 동안 가해자가 인스타그램 탈퇴하고 잠적하면 못 잡는 건데 아빠로서 딸이 걱정돼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읍소했다.

이후 4일이 지나도 경찰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A 씨는 다시 사이버수사대에 문의했다. 여청과로 이관됐으며 담당자가 쉬는 날이라 내일 연락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C 씨가 딸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한 A 씨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18일 A 씨와 B 양은 경찰서에 사건 조사를 받으러 갔다. 1시간 넘게 조사를 받으면서 들은 사실은 "이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2시간 거리에 떨어진 곳에서 23살 C씨를 잡았다. 피해자가 사는 지역에는 전혀 연고도 없는 사람이니 안심해도 된다"는 점이었다.

A 씨는 "그게 말이 되나. 이 지역에 안 사는데 어떻게 딸 학교 세밀한 정보까지 알고 있느냐"고 반문했고 경찰 측은 "요즘 인터넷이 발달돼 있어서 검색 몇 번만 해보면 알 수 있다. 걱정하지 말라"고 답했다.

며칠 고민하던 A 씨는 지역 페이스북 그룹에 "딸이 SNS 성적 피해를 받았다. 20대 초반 ○○○에 대해 아시는 분이나 추가 피해자가 있으면 연락달라"고 글을 올렸다.

글을 올리자마자 수십 건의 메시지가 왔다. 역시나. C 씨는 B 양이 다닌 중학교 졸업생에 2년 전 동종사건으로 검거돼 징역을 살고 출소한지 7개월지 지난 것으로 확인됐다.

수십 명의 피해자들도 B 양이 당한 것처럼 자위 행위며 강간 협박에 시달렸던 것이었다.

A 씨는 곧바로 경찰에 연락해 "왜 이 학교 졸업생인데 이 지역에 연고가 없다고 했냐. 동종 전과도 있다는데 딸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떨게 하려고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돌아온 경찰의 대답은 "아버님이 어떻게 아셨어요?"

A 씨는 "어떻게 피해자 아빠가 불안해서 가해자 차량번호 확인하고 이 지역 살았던 것 알려주고 동종 전과가 있다는 것까지 알려줘야 하나. 경찰은 수사에 참고하겠다는 답변만 했다"면서 "경찰은 계속 경찰을 믿어라. 아버님이 찾아다니지 말라고 하는데 믿음이 가야 걱정하지 않고 기다릴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같은 수법에 당한 피해자들은 2년 전에도 경찰에 신고했다가 "잡기 힘들다"라는 말만 듣고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A 씨는 "아빠인 저도 딸아이 문제로 이렇게 알아보고 찾으러 돌아다니면서 도움받을 곳이 없구나라고 느낄때 답답하고 불안하고 초초했다"면서 "아이에게 보낸 사진 영상 등을 보면서 몇 날 며칠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었는데.... 우리 대한민국은 꼭 직접적으로 강간을 당하고 폭행을 당하고 살인을 당하고 해야 처벌이 되고 경찰들도 빨리 움직이는 건가"라고 반문했다.

고통받는 딸을 위해 경찰 수사 상황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다는 A 씨의 사연은 25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시판에 올라왔으며 현재 사전동의 100명 이상을 충족해 공개 검토 절차를 밟고 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찰의 제1의 존재 의의가 바로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를 진압해서 국민이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지금 피해자에게 일어난 일은 매우 심각하고, 또 피의자의 협박 역시 매우 구체적이다"라며 "피해자와 가족이 느끼는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피의자 신원을 신속히 파악해서 사후 2차 피해가 발생되지 않도록 경찰은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라며 "이러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경찰의 인력이 충원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피의자를 특정했지만 사건 배당에 시간이 길게 걸리고, 다시 여청과로 재배당된 후 다시 수사가 지연되는 안타까운 현실은 결국 경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라며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기 위해 헌신과 열정을 받쳐야 하지만 그 전에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에 충분한 인력과 예산을 경찰에 투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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