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칼도 문명도 전염병 앞엔 무릎 꿇었다

입력 2020-11-26 18:07   수정 2022-03-23 11:53

1582년 서부 시베리아의 시비르한국을 멸망시키고 시베리아에 첫발을 디딘 러시아는 불과 1세기 만에 광대한 동토를 정복했다. 이는 13세기 몽골제국의 유라시아 정복이나 16세기 스페인의 중남미 진출에 비견할 만한 속도였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 같은 정복은 러시아의 강력한 군사력에 의한 것이기도 했지만 러시아인들이 원주민에게 퍼뜨린 티푸스, 매독 같은 전염병도 한몫했다. 시베리아 원주민은 오랫동안 외부 세계와 격리된 채 살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온 전염병에 몹시 취약했다. 1630년대 무렵 원주민 부족들은 전염병에 걸려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죽으며 저항할 힘을 잃었다.

도현신 작가의 《세계 역사와 지도를 바꾼 바이러스전쟁》은 세계 역사에서 간과돼왔지만, 판도를 재편하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전염병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고대 아테네부터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한 바이러스의 역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시달리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당시 최강대국인 페르시아의 침공을 물리치고 평화조약을 체결할 만큼 강력했다. 그러나 아테네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한 장티푸스 사태로 국력이 급격히 쇠약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그리스 북쪽의 마케도니아가 새로운 맹주로 떠올라 알렉산더 대왕에 이르러서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는 제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대제국을 한순간의 꿈으로 만들어 버린 것도 역시 전염병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라크 남부 원정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죽은 뒤 제국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14세기 중반 원나라에서 갑작스럽게 퍼진 흑사병으로 인한 막대한 인명 피해는 지배층인 몽골족과 피지배층인 한족을 구별하지 않았다. 특히 원나라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를 점령한 몽골계 국가들은 동양과 서양을 잇는 무역로를 보호하면서 이 무역로에서 거두는 세금으로 국가 재정을 꾸려나갔다. 그런데 흑사병이 중국에서 서양으로 삽시간에 번지자 겁에 질린 나라들은 무역로를 단절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재정적으로 힘들어진 몽골제국은 흑사병에 의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얘기다.

이 밖에 유럽에 종교개혁을 촉진시킨 흑사병, 조선의 몰락을 가져온 콜레라, 잉카와 아즈텍 문명을 쓰러지게 한 천연두 등 한 시대가 사라지고 새 문명이 탄생하는 순간에는 전염병이 있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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