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언제부터 시민단체가 최고권력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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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1-26 17:53   수정 2020-11-27 00:15

[안현실 칼럼] 언제부터 시민단체가 최고권력 됐나

“원전 문제를, 지금 정부 정책이 있습니다만, 고정불변의 것으로 놓고 2050년 탄소중립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안병옥 국가기후환경회의 운영위원장이 귀가 번쩍 뜨일 만한 발언을 했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사전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미세먼지와 온실가스의 주요 배출원인 석탄발전(2019년 전체 발전량의 40.4%)을 2045년 또는 그 이전까지 0으로 감축하되,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2040년 이전으로 앞당기는 방안도 함께 검토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석탄발전의 빈자리를 뭘로 채울지 궁금증이 생길 것은 당연했다.

탈원전을 고정불변으로 놓곤 탄소중립이 어렵다고 한다면 원전도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는 뜻이다. 탈원전 재논의로 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언론에서 나왔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급히 해명자료를 냈다. “이번 제안은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우선 추진하되,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보완적으로 활용한다는 의미”라며 “탈원전 정책과 배치되거나 기존 정책을 재논의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일반 국민의 의견과 산업계의 목소리도 수렴해 다양한 대안을 논의해야 하는 대통령자문기구마저 탈원전 앞에선 뱉은 말도 바로 거둬들여야 하는 무서운 세상이다. 원전은 절대로 미래 전력의 대안이 돼선 안 된다는 탈핵·반핵시민단체들의 비판 때문이란 해석이 흘러나온다. 탈원전에 집착하면서 정작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변화 대응이 오히려 꼬이고 있다고 보는 온건파 환경론자들조차 설 땅이 없어졌다는 후문이다.

상법개정안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경제 쪽 시민단체들도 완장을 찬 듯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한 해외사례가 있는 만큼 국회는 더 이상 이 논쟁에 얽매이지 말고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 상법개정안(정부 원안)이 연내 통과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해외 어딘가에 사례가 있다고 한국이 채택해야 할 이유가 되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이스라엘 이탈리아에선 더 강한 대주주 의결권 제한이 있다는 시민단체 해석이 자의적이라고 주장하는 법·경제학자도 많다.

“회사 소유가 분산돼 있어 대주주의 자기감독 문제가 없는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도 그렇다. 결국 기업지배구조를 시민단체가 바라는 모델로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란 극단적인 이분법적 발상을 넘어 오너 경영 자체에 대한 증오가 느껴진다. 자신들이 비난하는 한국 기업이 어떻게 미국 영국 일본 등의 기업과 경쟁하면서 더 많은 성과를 내는지, 오너 경영도 다양한 형태로 진화할 수 있다는 연구와 고민 따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주주 견제에 사로잡힌 시민단체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흔한 복수의결권 도입,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허용도 반대한다. 경제력을 집중시키고 세습에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른바 ‘기·승·전·재벌개혁’으로 벤처기업의 희망마저 꺾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기업규제 3법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흉내만 내고 실효성은 없는 복수의결권 및 CVC 허용과 퉁치려고 한다는 소문도 들린다. 시민단체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 얘기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 간 인수합병(M&A) 심사가 오락가락하는 데도 시민단체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든다. 공정위가 M&A를 허용하거나 불허하는 사유에 일관성을 찾기 어렵다. 경쟁당국 심사의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기업 성장의 역동성이 떨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산업 곳곳에서 파괴적 혁신으로 수직적 계열화가 와해되고 있는데도 대기업에 일감을 나눠주라고 압박하는 공정위 자체가 시민단체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청와대와 정부, 거대 여당이 마치 일부 시민단체의 꼭두각시란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이 나라가 누구의 것인지 묻게 하는 이유가 너무 많이 쌓이고 있다.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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