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노트 냄새, 사각사각 연필 소리…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도구

입력 2020-11-26 17:35   수정 2020-11-27 02:22


최근 서울 합정동 가구 쇼룸에서 ‘아임 디깅(I’m digging)전’이 열렸다. 전시회는 문구 브랜드 ‘소소문구’의 ‘디깅노트’ 17권을 전시했다. 디깅노트엔 목수, 편집자, 뮤지션, 만화가, 스니커즈 디자이너, 마케터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17명이 100일간 기록한 각자의 생각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브랜드 디자이너가 음악을 들으며 적은 곡명들, 페이스북 마케터가 흥미를 갖게 된 작은 물건들과 브랜드, 웹 디자이너의 등산 일기 등이다.

이 전시회의 부제는 ‘관심을 관점으로 키우는 기록’. 전시회를 기획한 유지현 소소문구 공동대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디어들, 호기심과 관심사 등을 키워 나가는 과정 등이 그 자체로 관람객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게 기획 의도”라고 설명했다. 그는 “문구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그냥 예쁘기만 한 물건을 만들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며 “명확한 브랜드 콘셉트와 방향을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답이 전시회였다”고 말했다.


소소문구의 브랜드 콘셉트는 ‘쓰는 사람’이다. 다양한 직업군의 ‘쓰는 사람’을 선정해 디깅노트를 기록하도록 한 이유다. 16일 동안 진행한 전시회엔 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매일 100명 이상이 다녀갔다. 마지막 주말엔 오후 7시까지 여는 전시의 입장을 오후 3시에 마감할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유 대표는 문구에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를 묻자 “누구나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꿈꾸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문구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삶을 성찰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소소문구의 또 다른 공동대표인 방지민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옷을 비롯한 다른 물건들은 단순히 소유하는 데 그치지만 문구는 그 안에 뭔가를 채웠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물건이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 매력에 빠지는 것 같아요.”

문구 덕후가 늘어나자 문구 전문점은 인기 명소로 자리잡았다. 서울 연남동의 ‘작은연필가게 흑심’, 성수동의 ‘포인트오브뷰’와 ‘오브젝트성수’, 홍대의 ‘호미화방’, 반포고속버스터미널 지하상가의 ‘한가람문구’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주말 찾아간 흑심은 도서관처럼 조용했다. 연필 쓰는 소리만 사각사각 들렸다. 10여 명이 진지한 자세로 연필을 들여다보고 필기감을 확인하고 있었다. 마치 좋아하는 가수의 신곡을 처음 접할 때처럼 상기된 얼굴로 빈티지 연필을 조심스레 집어 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 달에 두어 번 흑심을 찾아온다는 30대 직장인 박규리 씨는 “매일 다이어리를 쓰고 연필로 책 필사를 한다”고 했다. “차분하게 책상에 앉아 연필로 뭔가를 쓰는 행위 자체가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구 덕후가 늘어나는 현상이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란 해석도 나온다. 사회가 항상 ‘쓸데있는 행위’만 강요해 반작용으로 개인들이 점점 ‘쓸데없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한다는 분석이다. 문구를 사고 수집하고 기록하는 행위도 그중 하나다. 유 대표는 “효율도 중요하지만 너무 효율에만 집중하면 타인의 의지에 끌려다니다가 결국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른 채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했다. “덕후는 자기가 인생의 주체가 되는, 스스로 능동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에요. 덕질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내면에 쌓인 자기만의 철학도 깊어지는 거죠.”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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