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아시아나 '파산' 들고 나온 이 회장의 속내는

입력 2020-11-28 05:00  

≪이 기사는 11월27일(05:0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딜이 성사되지 않으면 아시아나항공이 연내 파산할 수 있다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발언이 여러 파장을 낳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KCGI가 신청한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딜이 무산된다"며 그 다음 수순으로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긴급자금 투입이 무산된다. 연내 파산을 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회장이 법원을 협박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장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매각이 되지 않으면 파산해야 한다는 협박을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한진칼 경영권을 놓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과 다투고 있는 KCGI 등 3자연합도 "항공업을 볼모로 사법부와 국민을 협박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관련 보도가 이어지자 산은은 "이 회장은 법원을 압박이나 협박한 적이 없고, 가처분 소송 관련 심문은 전적으로 법원이 판단할 문제이며, 아시아나항공 파산 또한 법원이 판단할 문제로 산은이 결정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무상감자는 왜 추진했나
이 회장의 '파산' 발언은 아시아나항공에 당장 긴급하게 자금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려는 성격이 짙다. 경영권 분쟁에 개입하려고 이 딜을 하는 게 아니라 아시아나가 연내 파산할 수 있고, 한진칼에 긴급한 자금 수요가 있어서 12월 중에 이 딜이 성사되어야 한다는 급박함을 호소하기 위해 일부러 강한 단어를 고른 것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아시아나항공이 불과 한달 후에 파산할 가능성이 진짜로 있을까.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아시아나항공 안팎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는 기류가 훨씬 강하다. 채권단 내에서 최근까지 아시아나항공의 연내 파산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은 관찰되지 않았다. 파산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면 그에 상응하는 분주함이 있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 경영진이 그런 가능성을 고려한 흔적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의 파산까지 언급한 배경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지난 9월11일 무산되면서 국내 외 신용평가회사들은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한국신용평가 회사채 기준 BBB-) 을 투기등급(BB+)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투기등급 하락시 아시아나항공이 가지고 있는 항공기 리스 등 각종 부채를 일시에 상환해야 하는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수조원의 부담이 한꺼번에 몰아닥치고,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통해 준비해 놓은 2조4000억원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지난 9월11일 딜 무산의 결과를 반영해 9월14일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을 '하향검토' 대상에 올린 한국신용평가 담당자는 9월28일 '국내 항공사 신용도 방어 여력은' 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신용등급 하락으로 모든 채권이 EOD가 되는 구조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일부 매출채권을 유동화한 증권(ABS)의 상환이 요구될 수는 있지만 모든 채권을 일시 상환해야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얘기다.



파산 가능성이 있다면 앞서 채권단이 아시아나항공 주식의 3대 1 무상감자를 추진한 이유도 해석하기 어렵다. 무상감자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은 연말 자본잠식률을 개선할 계획이었다. 감자를 하면 주식 병합 과정에서 자본금(7441억원)이 줄어들고 이 규모만큼 감자차익(자본잉여금)이 발생하고, 결손을 이 감자 차익으로 메울 수 있다. 당초 3대 1의 감자 규모는 상장 기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금액을 고려해 결정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계산을 다 마치고 이사회에서 관련 내용을 통과시킨 상태에서 연말에 갑자기 파산을 거론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파산은 단순한 수사(레토릭)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기안기금 지원 결정과도 배치
물론 자금을 더 지원하지 않으면 아시아나항공에는 문제가 생긴다. 형식적으로 '파산'보다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게 될 가능성이 있다. 파산은 빚을 갚지 못하는 상태가 된 회사의 모든 자산을 정리하여 '빚잔치'를 하고 끝내는 것을 말한다. 이와 달리 법정관리는 채권채무를 동결하고 법원 관리 하에 회사의 회생을 추진하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에 자금지원이 중단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이는 앞서 기안기금이 회의를 거쳐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2조4000억원 지원을 결의한 것과 배치된다. 기안기금에 요청된 금액은 HDC현산이 예정했던 2조2000억원 규모 유상증자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아시아나가 향후 1년 안팎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을 추정한 결과물이다. 물론 코로나19 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려우나, 백신에 대한 희망적인 소식이 들리는 지금 과거에 비해 급격하게 필요 금액이 증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부족자금을 계산하여 기안기금을 지원했는데 불과 두달만에 파산을 논하는 것은 그 기안기금 신청 과정에서 거짓 정보가 제공되었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현산 인수 불발로 인한 EOD 가능성까지 고려하여 부족자금이 산정된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항공업 구조조정 명분 있지만
이 회장은 국민 세금을 아끼기 위해서라도 '통합 항공사'를 만드는 딜이 성사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인터뷰에서 "기안기금 2조4000억원 중에 3000억원만 쓰고 나머지는 쓸 필요가 없게 된다"는 논리를 폈다. 8000억원을 한진칼에 지원하여 이 딜을 함으로써 기안기금을 안 써도 되고, 앞으로 아시아나에 추가로 필요한 자금도 들어가지 않는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대한항공과 중복으로 지원할 필요가 사라지면서 수조원을 아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물론 합병시에는 당연히 절감되는 금액이 있겠으나, '얼마만큼을 아낄 수 있는가'는 계산하기에 따라 고무줄처럼 달라질 수 있다. 채권단은 이번 대한항공 딜 과정에서 종전에 쓰던 회계법인을 교체했다. 아시아나 실사를 그간 담당해 온 EY한영 대신 삼일PwC회계법인에 아시아나에 관한 가치평가 등을 맡겼다. 삼일 측에서 내놓은 부족자금 규모가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 아시아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계산한 금액에 비해서는 훨씬 큰 금액이 필요하며 이 딜을 하면 그만큼의 금액을 아낄 수 있다고 계산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를 설득하고 (가처분 신청을 받은)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한 계산이다.

산은 관계자들은 일본 내에서도 양대 국적 항공사인 ANA와 JAL도 합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적극 알리는 중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0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에게 성장 전략을 조언하는 다케나카 헤이조 게이오대 명예교수가 "ANA와 JAL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터뷰를 게재했다. 산은에서는 이 기사를 소개하는 영문매체 심플플라잉의 링크를 이곳저곳에 전달하고 있다.

산은의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장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시장을 설득하기 위해서 산은이 내놓는 논리가 허술해 보이는 탓이다. 한 구조조정 업계 관계자는 "항공업 구조조정을 위해 양사를 합병한다는 그림 자체는 찬성이지만, 아시아나가 파산할 거라는 식의 다소 무리한 주장을 펼치면서 연내 유상증자 참여를 이해시키려고 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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