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가장 쉬운 방법 = '화폐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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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1-30 09:01  

사회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가장 쉬운 방법 = '화폐 타락'


“화폐가 타락하고 있다”는 말이 신문 기사나 방송 보도에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화폐가 타락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화폐를 만들어 공급하는 사람, 정부, 중앙은행이 타락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이때의 ‘타락’은 화폐를 마구 발행해 화폐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처럼 화폐도 타락하면 믿고 쓸 수가 없다. 화폐를 믿지 못하는 사회와 국가는 망한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한 사회의 기초를 무너뜨리는 수단 가운데 화폐의 타락만큼 교묘하고 확실한 방법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로마와 화폐 타락
‘화폐의 타락’으로 무너진 나라는 역사상 많았다. 로마제국이 망한 이유 중 하나가 화폐 타락이었다. 코모두스 황제는 은화(銀貨)에 철을 섞은 ‘나쁜 돈(惡貨)’을 퍼뜨렸다. 나라살림을 흥청망청 썼던 이 황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은 함량을 줄여서 은화를 더 많이 발행했다. 네로 황제는 한술 더 떴다. 아예 금 성분이 하나도 없는 도금 화폐를 뿌려댔다. 금 함량을 믿고 거래했던 사람들이 점차 로마 화폐, 즉 로마 경제를 믿지 않았다. 제국은 무너졌다.
얍족이 망한 이유
서태평양 ‘얍족 이야기’는 더 극적이다. 얍족은 ‘라이’라는 거대한 돌덩이를 화폐로 믿고 썼다. 얍족 사람들은 현대의 금덩어리처럼 구하기 힘든 이 돌에 가치를 부여했고, 이를 교환 매개로 삼아 거래했다. 1871년 비극이 벌어졌다. 표류해온 한 외국인 선장(데이비드 오키프)은 돌이 화폐로 쓰인다는 것을 알았고, 먼 곳에서 같은 돌을 대량으로 채굴한 뒤 얍족을 상대로 몰래 사용했다. 갑자기 돌(화폐)이 많아지자 돌은 더 이상 화폐 기능을 하지 못했다. 너무 흔해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태평양 뉴기니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원주민들은 구하기 힘든 조개껍데기를 교환 매개 즉, 화폐로 사용 중이었다. 이곳을 침공하던 일본은, 동일한 조개껍데기를 다른 곳에서 대량으로 구해서 마구 뿌려댔다. 경제 교란 작전이었다.
하이퍼인플레이션
세 개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양한 화폐 이론을 읽어낼 수 있다. 하이퍼인플레이션, 시뇨리지, 그레셤 법칙 등이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공급해 화폐가치가 종잇조각보다 못해지는 현상이다. 닭 한 마리를 사려면 지폐를 한 트럭 싣고 가야 한다. 급기야 액면가 1조원짜리 지폐가 만들어진다. 소고기 600g이 10조원이다. 물건을 사러 가는 도중에 물건 가격이 뛸 정도로 돈이 흔해진다. 1차 세계대전 후 독일, 2차 세계대전 후 짐바브웨, 현재의 베네수엘라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시뇨리지와 그레셤 법칙
로마 이야기에서는 시뇨리지(seigniorage)라는 전문용어를 배우게 된다. 이것은 화폐 액면가에서 화폐 제조비용과 유통비용을 뺀 차익을 말한다. 현대에서도 돈을 찍는 중앙은행(사실상 정부)이 1만원짜리 지폐를 만드는 비용으로 2000원을 썼다면, 8000원의 차익을 얻게 된다. 코모두스와 네로 황제는 금과 은 함량을 줄이고 액면가를 똑같이 유지했다는 점에서 막대한 시뇨리지를 거둔 셈이다. ‘그레셤의 법칙’도 로마 이야기 안에 있다. 16세기 영국 사람 토머스 그레셤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말했다. 금과 은 함량이 제대로 들어간 돈(양화)은 가치가 있기 때문에 시장에 나오지 않고, 함량이 낮은 나쁜 돈(악화)만 나돈다는 의미다.

인플레이션과 정부가 문제다
화폐 금융에서 중요한 이야기는 정부와 인플레이션의 관계다. 모든 국가의 정부는 돈을 많이 쓰려 한다. 정치적 목적과 경제적 이유에서다. 재난지원금으로 민심을 달래려 하고, 여러 복지정책으로 표를 얻으려 하고, 일자리를 늘린다는 이유로 돈을 푼다. 한국이 ‘재정적자(들어온 돈보다 더 쓴 적자) 110조원, 국가채무(나랏빚) 800조원’에 육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돈을 마구 풀면 화폐가치가 타락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것이다. 화폐 타락은 발권력을 독점한 정부의 타락 탓이다. 돈을 마구 찍어내 쓴 베네수엘라 유고 차베스 정부와 마두로 정부는 정말 타락한 정부였다. 비트코인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독점발권력에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나왔다는 점에 주목하자.
재정준칙
이처럼 정부가 과도하게 돈을 푸는 화폐 타락을 막기 위해 독일은 2009년 연방정부가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없도록 하는 재정준칙을 헌법에 넣었다. 한국엔 명문화된 재정준칙은 없었지만, 역대 정부는 ‘GDP 규모 대비 재정적자 3%, 국가채무 40%’를 불문율로 여기고 관리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이 준칙은 무너진 상태다. 최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이유 중 하나도 돈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돈을 푼다고 경제가 나아지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경제가 나아진다면, 모든 나라가 부자나라가 됐을 것이다. 통화량은 관리돼야 한다.

고기완 한경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큰돌을 화폐로 쓴 얍족 이야기를 더 알아보자.

② 복지와 일자리 창출에 돈을 많이 쓰면 부자나라가 되는지 토론해보자.

③ 시뇨리지, 그레셤 법칙, 재정준칙 등 용어의 의미를 더 조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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