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그룹법, 금융사 감독 지렛대로 대기업 통제수단 활용 우려”

입력 2020-11-27 16:23   수정 2020-11-27 17:02




대기업집단에 속한 금융회사들을 금융그룹으로 묶어 관리하는 ‘금융그룹통합감독’ 법제화가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여당은 비금융 계열사가 있는 금융그룹의 부실을 막기 위해선 별도의 규제체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반면 금융사 감독을 명분으로 ‘재벌 개혁’ 등 대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대표회사가 금융그룹 위험관리 책임
27일 정치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24일 전체회의에 정부가 제출한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금융그룹법)’ 제정안을 상정했다.

금융그룹법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과 함께 정부·여당이 다음달 9일까지인 정기국회 회기 내 통과를 공언한 ‘공정거래 3법’ 중 하나다. 여기서 금융그룹은 금융사들로만 구성된 은행계 금융지주가 아니면서 증권 보험 카드 등 금융사를 두 개 이상 운영하는 자산규모 5조원 이상 대기업을 뜻한다. 삼성 현대자동차 한화 미래에셋 교보 DB 등 6개 그룹이 대상이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금융당국은 이들 금융그룹의 위험현황과 관리실태를 정기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삼성생명과 미래에셋대우 등 각 그룹을 대표하는 회사들은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내부거래나 비금융계열사로 인한 동반부실 위험 등을 점검하는 것도 대표회사의 몫이다.

금융그룹의 건전성을 측정하는 지표로는 자본적정성 비율(적격자본/필요자본)이 제시됐다. 자본적정성 비율은 그룹 내 금융사 자본합계에서 중복자본을 제한 적격자본을 최소요구자본 및 그룹위험을 반영한 필요자본으로 나눈 값이다. 만약 자본적정성 비율이 100%에 미달하거나 위험관리가 부실한 경우 금융그룹은 당국에 자본확충이나 위험자산 매각 등을 담은 경영개선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계획을 이행하지 않은 금융그룹에 대해 당국은 명칭사용 금지나 각 금융업법에 따른 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
"금융그룹 따로 감독할 근거 불명확"
금융그룹통합감독의 필요성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비지주 금융그룹에 대한 규제 공백을 지적했고 유럽연합(EU)과 일본, 호주 등 선진국들도 이미 그룹 감독체계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비금융 계열사 부실이 금융사로 전이돼 약 1조6000억원 규모 피해를 낸 동양그룹 사태 방지를 위해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경제계와 야당, 학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반대 측에선 “이미 은행 증권 보험 등 업권별 건전성 규제 등이 촘촘한 만큼 굳이 금융그룹으로 대기업집단 전체를 묶어 감독할 유인이 적다”고 주장한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공정거래법과 개별법을 통해 강력한 저인망식 사전규제가 있는 한국에서 이러한 추가적 조치는 중복·과잉규제라는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동양사태의 경우는 부실계열사가 발행한 기업어음(CP)이나 채권을 계열금융사가 고객에 불완전판매해 발생한 것으로, 전이위험 등 금융그룹 감독과 직접 관련이 없다고 본다.

금융그룹통합감독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설명도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해 펴낸 ‘금융그룹통합감독 입법화에 대한 비판적 연구’ 논문을 보면 IMF는 은행 이외에 증권 보험 등 다른 업종 금융사를 포괄하는 복합금융그룹에 대한 감독이나 자본적정성 규제를 권고하지 않았다.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 EU·일본·호주의 경우도 국가별 대상기업이나 평가방식·규제가 제각각이라 일반화하기엔 무리라는 설명이다.

제도의 핵심인 그룹 자본적정성 평가가 자의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자본적정성 비율의 분모에 그룹위험을 포함시켰다. 그룹위험은 계열사 부실이 금융부문 전체로 이어지는 전이위험과 위험노출이 특정 분야에 편중되는 집중위험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그룹위험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산정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금융위는 법안이 통과되면 연구용역을 거쳐 나중에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으로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처음엔 느슨하게 그룹위험 산식을 설정했더라도 여론의 주목을 받는 사건을 거치며 결국 금융사를 옥죄는 ‘슈퍼규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대표회사에 그룹 위험관리와 내부통제 책임을 지우는 것도 현실과 동 떨어진 처사라는 비판도 있다. 은행계 금융지주그룹은 대부분 지주사가 100% 지분을 가진 비상장 자회사들로 구성돼 있다. 반면 대기업집단에 속한 금융그룹은 대체로 대표회사의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이 낮고 상장회사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회사가 그룹 위험관리를 도맡을 경우 기업별 독립경영 및 주주 간 이해상충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감독강화 대신 재벌 지배구조 겨냥하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부·여당이 금융그룹법 제정을 속도전 식으로 서두르는 진짜 이유는 ‘금융감독 강화’가 아닌 ‘재벌 지배구조 개혁’에 있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대표적인 재벌 개혁론자인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교수 시절부터 금융그룹통합감독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김 실장은 공정거래위원장 시절인 2017년 “삼성그룹 문제의 핵심은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의 관계”라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금융그룹통합감독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의 경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약 30조원 규모)이 그룹위험에 포함될 경우 자본적정성 비율이 크게 악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에셋도 박현주 회장의 개인 회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이 상호출자 방식으로 그룹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가 그룹위험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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