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아탈리 "마스크로 대표되는 '합리적 이타주의'로 팬데믹 극복해야"

입력 2020-11-29 17:43   수정 2020-12-09 19:01


프랑스가 배출한 세계적 석학인 자크 아탈리(77·사진)는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그는 20여 년 전인 1999년 펴낸 《21세기 사전》을 통해 팬데믹(대유행)이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8년에 펴낸 《미래대예측》에선 분노가 부추긴 이기주의가 전염병을 빠르게 확산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언은 현실이 됐다. 올초 전 세계로 퍼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지금까지 6200여만 명을 감염시켰고, 145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탈리는 한경BP가 번역 출간한 신간 《생명경제로의 전환》에서 해법을 제시한다. 아탈리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마스크로 대표되는 ‘합리적 이타주의’야말로 팬데믹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이타주의에 기반한 생명경제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해법이라고 제시했다.

▷20여 년 전 예측한 팬데믹이 현실이 됐습니다.

“예측이 틀릴 때도 많습니다. 다만 과거 인류 역사에서 찾아왔던 전염병의 확산 정도와 트렌드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많은 전문가와 대화도 했고요. 그 결과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 찾아올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틀리기를 원했지만 불행히도 현실이 됐습니다.”

▷팬데믹이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요.

“내년 말에 상황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 전에 끝난다면 인류에게 행운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코로나19에 적응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모든 잠재적인 위협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서에서 한국을 방역 모범국가로 소개했습니다.

“한국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현명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방역당국이 주도적으로 한 마스크 제작·배급, 진단키트 제작·검사, 접촉자 격리 등 세 가지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과거 전염병(메르스) 사태를 겪은 뒤 철저히 대비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도 커졌습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처럼 외출을 통제하지도 않았고, 경제가 완전히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방역 모범 국가입니다.”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

“국가 존립이 위태로운 팬데믹 시기엔 어려운 결정입니다. 집단 생존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보건 및 사법당국에서만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강제격리나 개인정보 침해에 대해 국민에게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의회가 결정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포괄적이고 일관성 있는 법치국가로 진화해야 합니다.”

▷유럽 등 다른 나라는 피해가 큽니다.

“한국이나 대만이 아니라 중국 모델을 따라간 것이 사태를 키웠습니다. 중국은 사태 초기 정보를 숨기고 전 세계에 거짓말을 일삼았습니다. 유럽 등 각국 정부는 국민에게도 투명하게 정보를 알리고 최대한 많은 마스크와 진단키트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마스크는 불필요하다는 말로 대중을 호도하고 느슨하게 대처하면서 피해가 커졌습니다. 스웨덴의 집단면역 실험도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선 여전히 마스크에 대한 거부감이 큽니다.

“마스크 거부야말로 이기주의의 결과물입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이기주의를 불러왔고, 팬데믹을 키웠습니다. 혼자만 마스크를 쓴다고 안전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도 써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에 대한 열린 마음을 앞세운 이타주의가 해법입니다. 이타주의를 앞세운 국가와 국민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이타적’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이를 ‘합리적 이타주의(rational altruism)’라고 부릅니다.”

▷이타주의가 국제사회에서 가능할까요. 코로나 백신 전쟁도 치열합니다.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후문제를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것처럼 전염병도 혼자서는 정복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19 백신도 전 세계 인구가 보유하고 있지 않는 한 아무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모두를 위한 백신 조달에 국제사회가 노력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전 세계에서 인종차별도 기승을 부립니다.

“비상식적일 뿐 아니라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만 인종차별은 유럽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영국과 프랑스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다름을 두려워합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예측합니까.

“우리는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매우 위험한 일이죠. 결코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재앙을 만들어 낸 과거와는 단절하고, 완전히 새로운 미래를 기획해야만 합니다.”

▷서구사회 중심의 역사가 바뀔까요.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시아는 코로나19와 상관없이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은 소프트 파워 등 많은 분야에서 아시아를 여전히 앞서고 있습니다. 중국도 과거 미국이나 영국처럼 초강대국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서에서 ‘중국 책임론’을 강하게 지적했습니다.

“국제사회는 중국에 코로나19와 관련한 더 많은 정보 제공을 요구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중국 전체주의 정권이 이런 정보를 국제사회에 제공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중국과 일부 동유럽 국가가 권력을 강화하는 것을 민주주의의 위기로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은 독재정권입니다. 특히 중국의 전체주의 정권은 자국민과 전 세계에 진실을 숨기면서 사태를 키웠습니다.”

▷정치체제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인가요.

“독재는 전염병을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이 아닙니다. 규제를 시행하려면 국민과 정보를 공유해야 합니다. 신뢰는 두려움보다 훨씬 효율적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큰 정부’가 부활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단순한 ‘사건’ 이상의 것입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보건·교육·디지털·청정에너지 등에 장기적으로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단순한 케인스식 고전경제학 논리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업의 국유화 등을 무작정 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더 나은 세상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생명경제(the economy of life)’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자크 아탈리는 누구
미테랑 대통령 고문·유럽부흥개발은행 총재 등 역임
자크 아탈리는 정치·경제·문화·역사를 아우르는 지식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겸비한 세계 최고의 석학으로 불린다. 미국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아탈리는 재기와 상상력, 추진력을 겸
비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지식인”이라고 평가했다.

아탈리는 1943년 알제리에서 태어난 뒤 프랑스로 건너왔다. 파리공과대와 파리정치대에서 수학했고, 전문 관료 양성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다. 소르본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취임 이후 10여 년간 특별고문으로 근무했다.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모든 현안에 대해 매일 아탈리의 조언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테랑 대통령의 요청으로 각국 정상과의 회담이나 국무회의 등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설립을 주도한 아탈리는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초대 총재를 지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재임 당시엔 정부 산하 성장촉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지금은 컨설팅 회사인 아탈리앤드아소시에(A&A)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21세기 사전》을 포함해 《어떻게 미래를 예측할 것인가》 《자크 아탈리의 긍정경제학》 《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미래의 물결》 등 50권 이상의 저서를 펴냈다. 2010년엔 교육부와 한국경제신문사 주최로 열린 ‘글로벌인재포럼 2010’에 참석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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