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 단어를 접하면 과거엔 극장이 생각났다. 팝콘과 함께. 그런데 요즘은 아니다. 넷플릭스, 침대, 스마트폰, 태블릿이 떠오른다. 한국 영화계도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극장 개봉이 아니라 넷플릭스 직행을 선택하는 영화가 늘고 있다. 박신혜와 전종서 주연의 ‘콜’은 지난 27일 넷플릭스에서 처음 공개됐다. 차인표와 조달환의 ‘차인표’, 제작비 240억원이 들어간 송중기와 김태리 주연의 ‘승리호’도 넷플릭스로 간다. 이를 두고 코로나19 여파와 거액의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런데 더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의 콘텐츠 이용 패턴 자체가 변했다는 점이다. 이제 많은 사람이 영화를 집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본다. 콘텐츠 이용이 굳이 시간을 따로 내서 즐겨야 하는 특별한 취미 활동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넷플릭스가 국내에 처음 진출한 지 5년도 채 안 돼 벌어진 시장의 변화다.
넷플릭스의 힘은 ‘다양성’으로부터 나온다. 우리가 보던 영화와 드라마의 폭은 생각보다 좁았다. 아무리 다양하게 본다고 해도 한국,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정도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들어오면서 무궁무진한 콘텐츠의 세계가 펼쳐졌다. 중앙은행을 습격한 천재와 범죄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 작은 마을의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벨기에 드라마 ‘검은 미로’ 등 이전에는 쉽게 접하지 못한 국가의 작품들을 즐기게 됐다. 중동 등 제3세계 콘텐츠도 찾아볼 수 있어 마니아적 성향의 이용자와 창작자들에겐 더욱 인기가 높다.
넷플릭스 등장으로 물결의 방향이 바뀌었듯, 또 다른 물결이 생겨날 수 있다. 도전자들의 부상은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넷플릭스의 다양성을 벌써 ‘다양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다소 어둡고 자극적인 소재가 반복돼 나오다 보니 이를 식상하게 여기고 다른 OTT 콘텐츠를 찾아보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왕좌의 게임’ 등을 만든 HBO의 콘텐츠를 독점 공급하는 ‘왓챠’, 국내 드라마와 예능을 다수 보유한 ‘웨이브’ 등으로 많은 이용자가 흘러 들어간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디즈니플러스’도 내년께 한국 시장에 진출한다.
“우리는 당신의 잠과 경쟁한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인 리드 헤이스팅스의 얘기는 이미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우리의 잠을 빼앗을 다음 승자는 어딜까. ‘넷플릭스의 밤’이 지속될까, 아니면 새로운 OTT를 보며 잠 못 이루게 될까. 분명한 건 무한한 콘텐츠 세상으로의 긴 여정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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