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주식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곳은 일본은행이 유일하다. 제도 도입 때 4500억엔이었던 연간 매입 한도는 네 차례에 걸쳐 12조엔까지 늘었다. ‘주가 정권’이라고 불릴 정도로 증시에 민감했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내각이 2012년 12월 집권 이후 부양책을 강화한 결과다. 지난 3~4월 코로나19 여파로 주가가 급락하자 일본은행은 매월 1조엔 이상의 ETF를 사들여 시장을 지탱했다. 센고쿠 마코토 도카이도쿄조사센터 연구위원은 일본은행이 ETF를 1조원 매입할 때마다 닛케이225지수를 260포인트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2013년 1월~2020년 8월 아베노믹스(아베 내각의 경기부양책) 기간 일본은행은 32조5000억엔어치의 주식을 순매수한 것으로 추산된다. 단순 계산으로 26,500선까지 오른 닛케이225지수에서 8450포인트를 일본은행이 밀어올린 셈이다.
지난 9월 말 기준 일본은행의 ETF 보유액은 40조4733억엔(시가 기준·약 429조5957억원)으로 반년 만에 10조엔 가까이 늘었다. 도쿄증시 1부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8%에서 6.5%로 증가했다. 1부 상장사 1800여 곳 가운데 일본은행이 ETF를 통해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종목만 389개사다. 10% 이상 보유한 회사도 70곳에 달한다. 현 추세대로라면 연내 41조엔어치의 주식을 보유한 일본 공적연금(GPIF)을 제치고 ‘주식회사 일본’의 최대주주가 될 전망이다. 일본은행의 자산은 690조269억엔으로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가 취임한 2013년 3월에 비해 5배가량 급증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국채 매입 등 양적 완화에 나선 결과다.
그렇다고 일본은행이 ETF 비중을 줄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매입을 중단하면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중단한 것으로 해석돼 주가가 폭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ETF를 국민에게 싼값에 양도하는 방식의 출구 전략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10년 일본은행이 ETF 제도를 도입할 당시 담당 국장이었던 구시다 시게키 일본증권금융사장은 증권애널리스트저널 최신호의 기고문을 통해 “의무 보유기간을 두는 대신 일본은행 보유 ETF 가격을 일부 할인해 개인에게 양도하자”고 제안했다. 다수의 일반 국민이 ETF를 보유하면 자본시장의 저변이 넓어져 정부의 국제금융허브 구상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예금에 편중된 1900조엔 규모의 개인 금융자산을 자본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역대 일본 정부의 주요 과제였다. 홍콩 중앙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매입한 주식을 개인에게 양도해 개인투자자 집단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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