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의 데스크 칼럼] 택배 기사 대책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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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2-02 17:53   수정 2020-12-03 00:19

[박수진의 데스크 칼럼] 택배 기사 대책 잘못됐다

정부가 지난 1일 또 택배 노동자 관련 대책을 내놨다. 택배 기사의 안전보건에 대한 원청 택배회사의 책임을 강화하고, 12월 한 달 동안 불공정 관행에 대한 제보를 받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0일 택배 근로자들의 과로사 방지 대책 마련을 지시한 뒤 벌써 두 번째 내놓은 범정부 대책이다. 그 사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택배 현장을 방문해 간담회(11월 17일)도 했다. 그 서슬에 택배 회사들은 앞다퉈 자체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택배 근로자 문제에 관한 한 그야말로 ‘발벗고’ 나서고 있다는 느낌이다.
1,2차 대책 핵심 벗어나
일각에서는 노동계로부터 개혁 후퇴로 공격받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택배 근로자 이슈로 반전을 노리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다른 현안에 대해서는 입 닫고, 나 몰라라 하지만 유독 택배 기사 문제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 들어서만 10명의 택배 기사가 과로(추정)로 사망한 터다. 어설픈 정치적 해석보다는 뒤늦은 대응을 비판하는 게 더 맞다고 본다.

문제는 ‘늦었지만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놨는지다. 결론은 ‘대책도 늦었거니와 내용도 한참 핵심을 벗어났다’는 쪽으로 모아지고 있다. 왜 그럴까.

1, 2차 대책은 △분류 인원 증원 △새벽배송 금지 △주 5일제 시행 △배송 구역과 물량 조정 등 ‘근로시간 줄이기’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분류 인원 증원을 제외한 나머지 대책에 대해 현장의 평가는 비판적이다. “현장을 너무 모른다”(택배 경력 10년차 A씨)는 목소리가 많다. 일감이 늘면 아르바이트를 채용하면 되는데 왜 굳이 물량과 구역을 조정하고, 일하는 시간까지 줄이려 하느냐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택배비 인상 같은 핵심 이슈를 정부가 피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대통령 지시 후 택배 기사 1862명을 대상으로 업무 여건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택배 기사들이 요구한 개선사항 1위는 배달 수수료 인상(31.4%)이었다. 정부가 권고한 분류작업 인력 증원(25.6%)보다 많았다.
택배비 인상이 대책의 핵심
그런데도 대책에는 택배비 인상이 추후 과제로 빠졌다. 택배비 인상은 실상 택배 근로자들의 과로 방지에 꼭 필요한 조치다. 택배 물량은 비대면 경제 활성화 등으로 2015년 후 매년 10%씩 늘었지만 단가는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택배비를 올리지 않고서는 더 많은 물량을 배송해야 소득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니다. 택배 회사들은 경쟁 때문에 개별적으로 인상에 나설 수 없다. 화주들과 단체로 합의해야 한다. 이 논의엔 정부와 정치권, 근로자단체도 참여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들의 가격 인상 저항도 만만찮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2015년 이후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새벽배송과 총알배송 서비스에 길들여져 있다. 월 2900원이면 회수 한도 없이 총알배송 서비스를 받는다. 연필 한 자루도 거리낌없이 배달을 시킨다. 그 기저엔 택배 노동자들의 값싼 노동력이 자리 잡고 있다. 소비자들은 스스로에게 “더 비싼 서비스 가격을 물을 준비가 돼 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럴듯하고 내기 쉬운 대책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가 이번에도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뒤로 미루고 생색내는 일만 챙겼다”(택배회사 B간부)는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길 기대해본다.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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