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허술한 검사징계법이라니…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0-12-04 09:40   수정 2020-12-05 06:55


추미애 법무장관(왼쪽)의 윤석열 검찰총장(오른쪽) 징계 청구와 직무배제 명령으로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간 초유의 갈등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내치려는 과정에서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진 법제가 '검사징계법'이다. 벤츠검사 사건 정도의 검사 비위 건이라야 사회적 이목을 끌기 때문에 웬만해선 검사징계법의 존재 자체를 일반인들은 모른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추 장관이 지난 24일 저녁 다급하게 윤 총장을 징계 청구하겠다고 했을 때 바로 생겨난 의문이 '어디에 청구?'라는 물음이었다. 열심히 국가공무원법을 찾아보았지만, 결국 검사는 수많은 국가공무원과는 역시 다른 '급'이었다. 준(準)사법기관인 검사의 지위와 역할을 감안해 징계 등 인사 처분을 일반 공무원과는 다르게, 더욱 엄격하게 그 조건과 절차를 검사징계법이란 법률로 구비해놓은 것이다. 제정 연도도 무려 1957년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법제도이기도 하다.
◆검찰총장도 대상 삼은 검사징계법
검사징계법의 구성은 일반 법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목적, 징계 사유, 징계 종류, 징계위원회 구성 등으로 시작한다. 눈길을 잡는 부분은 '제7조 징계의 청구와 개시' 부분이다. 2항에서 검찰총장은 검사가 징계 사유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다고 인정할 때 징계 심의를 청구해야 한다. 문제는 3항인데, 이렇게 기술돼 있다.

<i>③ 검찰총장인 검사에 대한 징계 및 제7조의2에 따른 징계부가금 부과(이하 "징계등"이라 한다)는 법무부장관이 청구하여야 한다. <개정 2014. 5. 20.></i>

징계부가금은 여기서 논의하려는 사항이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검찰총장인 검사'를 징계해야 하는 경우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어떻게 보면 사문화될 수 있는 조항이기 때문이다. 현직 검찰총장을 징계 청구해야 할 정도로 명약관화한 징계 사유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이는 사법 제도와 절차에 기댈 게 아니라 정치 영역으로 넘어가 정권 차원에서 심각하게 판단해야 할 사안이다. 유불리를 떠나 정치적 해결을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의 수, 가능성이 버젓이 법률에 명시돼 있다니, 그것도 '검사징계법'에 말이다.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검찰총장 징계는 현실화할 가능성은 적다고 하더라도 법리적 모순이 없게 하려고 명시한 듯하다. 2항에서 검사에 대해 징계 심의를 청구할 수 있다고 했는데, 바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검찰총장이나 검찰 최고위 간부는 어쩌나' 하는 점이다. 형평성 차원에서 필요하고, 한편으론 검찰총장까지 징계 청구할 수 있어야 검찰권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다는 논리로 규정된 것 같다.
◆명분 못 따라간 후속 규정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분명히 제7조 3항에서 검찰총장의 징계 청구는 법무장관이 해야 한다고 규정해 놓고는, 제5조로 돌아가보면 위원회 구성은 일반적인 경우나 검찰총장을 징계 청구하는 경우나 똑같이 하도록 돼 있다. 즉, 7명으로 구성하는데, 법무장관과 법무차관은 당연직 위원이고 나머지 5명을 법무장관이 지명토록 했다. 이 부분이 결정적으로 어설프다. 검찰총장까지 징계 청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명시해놓고는 그 유일한 청구권자인 법무장관이 전권으로 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총장 징계 청구는 만에 하나 현실화할 경우 당연히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이 빌미가 될 테다. 그런데 징계위 구성은 전적으로 장관에게 일임한 것이다. 청구는 장관이 하더라도, 위원회 구성 권한은 장관에게 주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법률은 현실과 동 떨어진 대단한 체계가 아니다. 그 시대의 상식을 담은 공동체의 최고 규범일 뿐이다. 다시 말하면, 상식에 부합하는 게 법의 원리다. 상식에 어긋나거나, 상식으로도 의문이 가시지 않는 법체계나 법조문은 합리적으로 수정·보완돼야 한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추·윤 갈등을 보면서 법을 최고 수준에서 다룬다는 법무부와 검찰이 자신들 일이라 그런지 어떤지, 전혀 이 부분은 합리적으로 규율돼 있지 않다. 헛웃음이 지어지는 부분이다.

현실이 이러다보니 추장관의 '칼춤'이 좀더 신통력을 발휘하고 있다. 비록 행정법원의 직무배제 효력정지 인용, 검사들의 반발, 그리고 윤 총장측의 연기 요청 등으로 오는 10일로 징계위 개최가 미뤄졌다지만 여전히 법률상 맹점은 남는다. '징계하려는 자가 징계위를 구성하는' 상식에 맞지 않는 오류다.
◆최근 검사징계법 개정에도 남는 문제
이런 맹점을 시정하려 한 건지, 지난 10월 20일자로 검사징계법의 일부 규정이 개정됐다. 징계위원을 7명에서 9명으로 늘리고, 위원 구성에서도 법무장관의 권한을 대폭 줄였다. 내년 1월 시행 예정이다. 그러나 검사징계법이 제정되고 수십년이 지나서야 징계위 구성과 관련한 법무장관의 막강한 권한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리고 이번 윤 총장 징계 건에선 개정 전 규정이 적용될 공산이 크다.

문제는 하나 더 있다. 징계 혐의자에 대한 직무정지를 규정한 제8조는 그대로 남아있는 점이다.

<i>② 법무부장관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징계혐의자에게 직무 집행의 정지를 명할 수 있다.</i>

여전히 법무장관은 징계 혐의자가 검찰총장인 경우에도 총장의 직무집행 정지를 명할 수 있다. 이 역시 검찰총장을 법무장관이 징계 청구하는 경우엔 직무집행 정지 명령권을 배제하는 게 상식에 맞다. 좀더 공정한 판단을 위해서다. 이번처럼 효력정지 신청을 할 경우 법원의 판단이 나와야 하는, 다소 복잡미묘한 상황은 만들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정치적 악용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이렇게 보면 법률 전문가 집단이라는 법무부 공무원들과 검찰 사람들의 자기들 규율은 참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법리적으로도 완결되지 못하고, 현실이나 상식에 기반해서도 허점 투성이다. 이런 사이에 국민들은 추장관과 윤총장의 갈등에 생업을 뒤로 하고, 국가 존망이 걸린 일인양 마음을 써야 했다.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정연한 법 규정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나라 전체로 봐도 헛 힘 쓸 시간과 여력이 별로 없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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