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그랩의 파죽지세가 씁쓸한 이유

입력 2020-12-04 17:20   수정 2020-12-05 00:10

동남아시아 최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 그랩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이 글로벌 금융투자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싱가포르 금융당국인 통화청(MAS)은 4일 저녁 인터넷 전문은행(digital-only bank) 사업자로 그랩 등 네 곳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소매금융업을 포함하는 전체 면허(full license)는 ‘동남아 우버’로 불리는 승차공유업체 그랩 컨소시엄과 전자상거래업체 씨(SEA)가 차지했다. 기업금융만 가능한 ‘반쪽 면허’(wholesale license)는 중국의 앤트그룹과 그린랜드파이낸셜홀딩스그룹 컨소시엄에 돌아갔다.

한국은 2015년 일찌감치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인가로 인터넷 전문은행 시대를 열어 동남아 도시국가의 도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면허를 따내기 위해 각축을 벌인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최근 기업공개(IPO) 준비 과정에서 300조원 넘는 가치를 인정받은 금융회사 앤트그룹뿐만 아니라 바이트댄스·샤오미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의 경쟁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틱톡’ 운영사 바이트댄스는 최소 100조원, 홍콩증시 상장사인 샤오미는 약 90조원으로 기업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한국 증시에서 이들보다 비싼 값에 거래되는 기업은 삼성전자밖에 없다.

공룡 스타트업과 IT 기업이 싱가포르 은행 면허를 탐내는 이유는 하나다. 글로벌 핀테크 중심지인 싱가포르를 발판으로 삼아 아시아 은행산업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수억 명의 다국적 이용자 기반을 갖춘 이들의 은행업 진출은 출발부터 한국의 ‘우물 안’ 인터넷 전문은행과 다른 셈이다. 싱가포르 벤처캐피털(VC)인 센토의 한상우 파트너는 “싱가포르는 물론 동남아 은행산업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며 “사모펀드(PEF)와 VC 운용업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랩은 최종 후보 14곳 중에서도 전체 면허를 얻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혀왔다. 싱가포르의 대표 유니콘이면서 싱가포르 최대 통신사인 싱텔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랩은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승차공유 서비스업을 시작한 뒤 2018년 우버의 동남아 사업까지 집어삼키며 지역 최강의 모빌리티(이동수단) 사업자로 자리잡았다. 최근에는 음식배달, 헬스케어, 보험, 모바일 결제 등으로 사업영역을 무섭게 확장하고 있다.

그랩의 전방위 사업 확장은 동남아 경제의 빠른 디지털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구글·테마섹·베인&컴퍼니가 매년 공동으로 발간하는 ‘이코노미(e-Conomy) 보고서’에 따르면 동남아 주요 6개국의 인터넷 경제 규모(전자상거래 등의 총거래액 기준)는 5년마다 세 배로 커지고 있다. 2015년 320억달러(약 35조원)에서 2020년 1050억달러로 늘어났고, 2025년 3090억달러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PEF 운용사와 VC들이 동남아 스타트업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대표 PEF 운용사인 스틱인베스트먼트는 그랩에 2억달러를 투자했다고 지난 9월 밝혔다. 국내 한 금융투자회사의 싱가포르 법인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동남아 인재들이 스타트업에 몰리고 있다”며 “유능한 청년들이 공무원을 하려 하는 한국과는 달리 활력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랩의 거침없는 성장과 연이은 대규모 자본 유치는 글로벌 모빌리티 경쟁에서 ‘갈라파고스’를 자초한 한국에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정치적 이유 등으로 국내 시장에서조차 경쟁과 성장의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호응에도 불구하고 쏘카의 승합차 공유 서비스인 ‘타다’의 영업이 중단된 것은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 적지 않은 좌절감을 안겼다.

얼마 전 한 베트남 유튜버의 동영상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한국인은 베트남의 발전을 두려워합니까’라는 도발적인 제목 때문이었다. ‘어이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동남아 청년들의 이 같은 자신감이 경제의 체질 개선을 앞당기고 더 많은 스타트업의 성공을 자극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업 경쟁력도 일순간 뒤집힐 수 있다. 혁신 의지를 꺾는 각종 규제를 걷어내지 않는다면 한국 인터넷 전문은행도 머지않아 ‘그랩뱅크’의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베트남·인도네시아 인터넷경제 두자릿수 성장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인터넷 경제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온라인 여행 매출 위축에도 불구하고 두 자릿수 성장률을 나타냈다.

구글·테마섹·베인&컴퍼니가 최근 공동으로 펴낸 ‘이코노미(e-Conomy) 2020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의 올해 인터넷 경제 규모는 140억달러로 작년의 120억달러에서 17% 성장했다. 평균 5% 성장한 동남아 주요 6개국 가운데 가장 빠른 성장 속도다. 인터넷 경제란 전자상거래나 온라인 여행 등 인터넷 기반 서비스의 총거래액(GMV)을 말한다. 2위는 인도네시아로 11% 성장했다. 올해 총거래액은 440억달러로 규모 면에서 태국(180억달러), 말레이시아(114억달러), 싱가포르(90억달러) 등을 크게 앞섰다. 2015년 이후 작년까지 인도네시아 인터넷 경제는 연평균 49% 성장해 같은 기간 베트남의 38%를 능가했다.

보고서는 “음식배달 앱 사용, 온라인 식료품 쇼핑 등이 성장을 주도했다”면서 “중소기업들의 디지털 사업 전환 추세 등을 감안할 때 동남아 인터넷 경제의 장기 성장 전망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밝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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