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가치투자 大家…"다시 가치株 시대 온다"

입력 2020-12-08 17:30   수정 2020-12-16 15:30

“저는 물러나지만 가치주의 시대는 다시 돌아옵니다. 내년 1분기에 기회가 찾아올 것 같습니다.”

‘국내 가치투자 1세대’ ‘한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린 이채원 한국밸류운용 사장(사진)이 물러난다. 이 사장은 한국밸류운용 창립 멤버로 16년간 한국의 가치투자를 정착시킨 상징적 인물이다. 원조의 퇴장은 가치주 논란에 다시 한번 불을 붙일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물러나는 한국의 버핏
이 사장은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성과 부진에 책임을 지고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한 결정”이라고 사의를 밝힌 이유를 전했다. 그는 오는 11일께로 예정된 인사를 앞두고 스스로 한국금융지주에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2~3년간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이 사장은 1998년 국내 최초의 가치투자펀드 시리즈를 시장에 내놓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동원투신운용 자문운용본부장과 한국투자증권 자산운용본부장 등을 거친 그는 2006년 한국밸류운용 창립 멤버로 시작해 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원조 가치투자자’로 불리는 이 사장은 ‘가치주의 몰락’이란 표현이 뼈아팠다고 했다. 그래서 보란듯이 성과를 낸 뒤 물러나고 싶었다. 하지만 ‘제로(0)금리’ 시대에 성장주의 질주에 맞서기엔 버거웠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국밸류운용의 연초 이후 수익률(국내 주식 기준)은 46곳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선두권에 있는 운용사들이 40%에 달하는 수익을 내는 동안 10% 남짓한 수익률을 기록했다.

과거에도 어려운 시기는 있었다.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기다림은 큰 결실로 이어졌다. 2000년부터 6년간 가치투자로 435%의 고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가치투자의 길을 함께 걸어온 강방천 에셋플러스 회장은 “재무제표와 기업에 대한 정량 평가를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고수해온 이 사장의 투자 방식은 수익률과 관계없이 업계의 소중한 자산이자 롤모델이었다”고 평했다.
“주가 알 수 없어 좋은 주식 산다”
이 대표는 “내년 1분기 다시 가치주에 기회가 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1.5%에 도달하는 시점이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패시브 자금이 주도하는 시장에서 금리가 오르면 성장주는 무조건 꺾이게 돼 있다”며 “내년 1월 미국 상원 다수당이 결정되면 경기부양책이 힘을 받아 경기민감주가 움직이고 금리가 올라 가치주가 수익을 내는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0.9%까지 올라온 상황에서 1%를 넘으면 상징적으로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미 차트상으론 성장주가 꺾이고 가치주가 오르는 그림이 나오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 대표는 “금리가 떨어지면 가치주의 매력도 낮아지는 흐름을 보인다”며 “제로 금리 시대를 맞아 성장주에 비해 매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고 분석했다.

이 대표와 함께 가치투자 1세대로 분류되는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대표 역시 이 대표의 퇴장을 안타까워하면서도 “가치주 시대는 이미 다시 시작됐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그는 “사람들이 부동산처럼 주식을 장기 투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변동성이 큰 성장주 대신 장기 투자가 가능한 가치투자로 눈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가치주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대가의 용퇴가 서글프다’는 반응과 함께 가치주의 몰락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엇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치투자는 비교적 싼값에 좋은 기업의 주식을 사는 투자를 말한다. “주가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싼 주식을 산다”는 이 대표의 말이 가치투자를 잘 설명해 준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으로 투자가치를 평가했지만 전례 없는 유동성의 힘 앞에서 이들 지표는 무용했다.

이 대표도 국내에서 가치주가 주목받기 어렵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주주 환원율로 보면 글로벌 평균이 50% 넘는데 한국은 20%에 불과하다”며 “기업 지배구조나 주주환원 정책이 바뀌지 않는 이상 가치주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털어놨다.

박재원/양병훈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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