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노조 포비아' 현실로…"한국서 기업할 이유 없다"

입력 2020-12-09 17:30   수정 2020-12-17 15:07


“이 정도면 한국에서 사업을 할 이유가 없어요. 해외로 본사를 이전하는 곳이 나올 겁니다.”

국회에 계류된 반(反)기업 법안들을 한꺼번에 밀어붙인 9일 여당의 ‘입법 테러’를 지켜본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꺼낸 얘기다. 그는 상법 개정안 등 ‘기업규제 3법’으로 경영권 방어가 까다로워졌고 노동조합법 개정으로 기업과 노조의 균형도 무너졌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강도 높은 형사처벌 조항까지 담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경영권 상속을 원천봉쇄한 상속세법 등 국내 기업을 옥죄는 ‘법률 포위망’이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부글부글 끓는 기업들
이날 ‘규제 3법’이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하는 상황을 지켜본 기업인들은 허탈함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여당의 입법 테러로 경영 여건이 ‘시계제로’ 상황으로 내몰렸다는 것이 주요 기업의 공통된 반응이다. 주요 기업의 대관 담당 임원들은 “때리면 맞는 게 기업이냐”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냐” 등의 발언을 앞세워 ‘여당의 폭주’와 ‘야당의 방조’를 비난했다. 경제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날 긴급 호소문을 내고 “투기자본이 선임한 감사위원에 의한 핵심기술 유출 우려가 커졌고 이해관계자의 무분별한 소송도 불가피하다”며 “기업이 투자와 일자리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더 이상 무슨 말씀을 드리겠나. 할 말이 없다”며 망연자실해했다.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하고 이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각각 3%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다. 2003년 4월 SK그룹을 공격한 소버린자산운용과 같은 사례가 급증할 것이란 지적이다. 당시 소버린은 SK글로벌 분식 사태에 따른 경영 공백을 틈타 SK(주) 지분 14.99%를 사들였고 사외이사 자리와 자산 매각, 주주배당 확대 등을 요구했다. ‘3%룰’은 법인을 다섯 개로 쪼개 ‘연합전선’을 펼치는 방법으로 우회했다. SK 측은 백기사 모집에 나서는 등 홍역을 치르면서 가까스로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다. 경제계 관계자는 “당시 상법에 감사위원의 분리선임과 ‘개별 3%룰’이 명시돼 있었다면 꼼짝없이 사외이사 자리를 내줘야 했을 것”이라며 “기업들이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3%룰에 목을 매는 이유”라고 했다.

“투기자본 연합하면 사외이사 내줘야”
여당안에 명시된 개별 3%룰을 적용,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하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대다수 기업이 헤지펀드의 공격에 노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가총액 30대 기업 중 지금은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이 외국인 투자자들을 넘어서지만 개별 3%룰을 적용하면 형세가 역전되는 곳이 14개사다. LG화학과 SK텔레콤 같은 지주회사의 사업자회사들이 문제다. 최대주주가 지주회사를 통해 간접지배하는 구조여서 회사 측이 확보할 수 있는 의결권이 3%뿐이다. 반면 외국계 투자자들의 지분은 15~20%에 달한다. 일부 헤지펀드만 연합해도 이사회의 일원인 감사위원 자리를 꿰찰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벌써부터 경영권 방어 전담조직을 꾸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며 “본업에 투입할 인력과 재원이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자회사 임원이 손해를 발생시켰을 경우 모회사 주주가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도록 한 다중소송제에 대한 우려도 상당했다. 소송 원고 자격 요건을 상장사는 지분 0.5% 이상, 비상장사는 1% 이상 보유로 다소 강화했지만 ‘묻지마 소송’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 경제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단 소송이 벌어지면 사측이 이기더라도 이미지 실추를 피하기 힘들다.

노조의 파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자동차업계에선 새 노동조합법이 걱정이다. 해고자와 실업자가 노조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면 정치 파업이 잦아질 수밖에 없다는 게 기업들의 토로다. 업계 관계자는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산라인을 쇠사슬로 묶어버리고 파업을 강행하는 노조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라고 했다.

송형석/도병욱/이수빈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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