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자가 사업장 활보해도, 노조가 공장 점거해도…기업 '속수무책'

입력 2020-12-09 17:29   수정 2020-12-17 15:08

지난 8일 저녁 8시부터 이튿날 새벽 3시께까지 진행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환노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고용노동부 관계자들은 곤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고용부는 지난 2년간 노사정이 합의해 만든 노조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통과될 것으로 기대해 왔다. 하지만 결과는 노조에 기울 대로 기운 기형적 노조법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여당의 입법 독주에 정부 관계자들도 경악했다.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도 여당이 강행한 법안 그대로였다.

勞 요구만 반영, 경영계 요구는 묵살
정부가 지난 6월 국회에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실업·해고자의 기업별 노조 가입 허용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삭제 등을 골자로 한다. 대신 경영계의 우려를 감안해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시 사전 노사합의 △사업장 생산·주요 시설 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등을 함께 명시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경영계를 ‘배려’한 세 가지 조항은 국회에서 모두 삭제되거나 무력화됐다. 사실상 노동계 요구만을 수용하는 쪽으로 개정된 것이다.

우선 해고·실직자 등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제한 규정이 삭제됐다. 당초 정부안에는 ‘비종사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 및 시설 사용에 관해 노사 간 합의된 절차 또는 사업장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했으나 환노위 심사 과정에서 통째로 빠졌다. 극심한 노사 갈등 속에 해고된 자가 노조원이 돼 사업장을 활보하더라도 회사는 제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해고자가 회사를 마음껏 드나들 수 있다는 것은 사측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이라며 “출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산업안전 감독 등을 요구하는 등 경영 간섭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안에 있던 ‘사업장 주요 시설 점거 금지’ 조항도 사라졌다. 노조가 쟁의행위 중에 사업장의 주요 시설을 점거해 영업을 방해하더라도 처벌할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다만 ‘노조는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로 쟁의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신설했으나, 해석하기에 따라 기준이 모호해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단협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겠다는 정부안도 후퇴했다. 당초 ‘단협 유효기간 상한 3년 연장’ 조항은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노사 합의로 정한다’고 바뀌었다. 사실상 노조가 요구하면 회사는 언제든지 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해고자가 주도하는 파업 가능성도
앞으로는 기업별 노사 임금 협상 테이블에 해당 기업에서 해고된 사람이 앉을 수 있게 된다. 노조로서는 협상과 투쟁에 능숙한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가입시켜 전임자 역할을 맡길 수 있다. 노조의 임원 자격을 해당 사업장 종사자로 한정하기는 했지만, 경영계는 해고자가 주도하는 복직 투쟁, 파업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노조법과 함께 공무원의 노조 가입기준 중 직급 제한(현행 6급 이하만 가능)을 폐지하고, 퇴직 공무원·교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공무원노조법과 교원노조법도 처리됐다.

반면 경영계가 요구했던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노조의 부당노동행위 처벌 등 사측의 대항권 관련 조항은 심사 과정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고, 선택근로제 단위기간을 연구개발 업무에 한해서나마 3개월(현행 1개월)로 늘리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내년 중소기업(50~299인 사업장) 주 52시간제 시행을 앞둔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평가다.

경영계는 입법절차 중단을 요구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노조에 편향된 법안이 통과돼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낀다”며 “본회의 상정 등 추가 입법 절차를 중단해달라”는 성명을 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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