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전도사 증언 들으면 '대북전단금지법' 못 만들 것"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0-12-09 09:53   수정 2020-12-09 11:41



거대 여당의 ‘폭주 입법’가운데는 문제가 많은 법안들이 많다. 이른바 ‘기업규제 3법’은 모든 주요 경제단체가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하는 것들이다. 공수처법도 국가의 형사법체제를 바꾸자는 중요한 법인데,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에 기형적이고 비이성적인 대립이 장기화되는 와중에 기습 처리됐다. 법사위를 통과한 문제의 법 중에는 의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지적과 비판을 강하게 받은 ‘518 왜곡처벌법’과 ‘김여정하명법’이라는 조롱까지 받은 ‘대북전단살포금지법’도 있다. 4 가지 법 모두 반민주적 절차에서나 위헌적 내용에서나 문제가 다분하다. 한경을 비롯해 많은 언론이 입법 초기단계에서부터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해왔고, 경제 단체 등 이해당사자들이 국회로 찾아가면서까지 ‘재고’를 요청하면서 최소한 ‘속도조절’이라도 요구했으나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당이 의원 숫자를 믿고 밀어붙이는 문제의 법들 가운데 대북전단금지법이 있다. 북한의 ‘2대 실상’을 보고 있다면 이렇게 만들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2대 실상이라면 착착 개발이 진전돼 실전배치에 이른 핵무기와 해묵은 인권문제다. 북한의 핵문제는 이제 만성화되면서 사회적 불감증이 만연해질 정도로 오래됐고, 기정사실처럼 됐다. 정부는 아직도 북한의 비핵화가 ‘남북 대화의 종점(목표점)’인가. 여기에 답해야 한다. 갈수록 북한 인권 문제도 아예 ‘남의 일’로 굳어져가는 분위기다.

북한 인권 문제는 북한이어서가 아니라 인류공동의 과제라는 점에서도 우리가 눈감아서는 안 된다. 마침 지난 주말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남북언론교류 위원회에서 있었던 행사를 소개한다. 편집인협회 산하의 이 위원회는 해마다 두어 차례씩 꾸준히 전문가 초청회를 겸한 토론회를 가져왔다. 북한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남북관계 개선 및 교류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노력이었다. 북한에 대해 편견을 없애고 객관적으로 보려는 시도가 많았다. 지난 주말 강원도 원주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이색적인 인사가 연사로 초청됐다. 때문에 최근 몇 번의 행사와는 주제나 토론 분위기도 조금 달랐다고 볼 수 있다.

탈북인으로 한국에 정착한 배영호 교육 전도사(사진 오른쪽 강연자)였다. 39살의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기독교 전도를 하고 있지만, 북한의 인권실태에 대해 생생하게 체험한 바를 증언했다.

수년간 몸으로 겪은 사실을 육성으로 전하는 그의 체험 강연은 다시 한 번 충격적이었다. 북한 표현으로 ‘고난의 행군’ 시절에 빚어졌던 기아 실상과 수용소로 밀려가는 과정과 여러 종류의 수감시설에서 빚어지는 일들에 대해 그는 생생히 전했다. 눈물 없이는 듣기 어려운 내용이 많았다. 키가 작은 편이기는 했지만 그는 한때 체중이 32kg 아래로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쉽게 상상이 안 될 정도였다. 기독교에 대한 북한의 탄압은 특히 심했고, 주민들 간의 서로 감시망도 이 대목에서는 무서울 정도였다. 수용시설로 들락거리면서도 그가 버틴 힘은 북한 당국의 엄한 감시 속에서도 키워온 신앙심이라고 했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비정상적인 실상과 그가 겪은 숱한 일화를 하나하나 전하지는 않겠다. 어렵게 한국에 정착해 작은 수입으로 두 딸과 네 가족이 알콩달콩 재미를 찾으며 살아가는 애잔한 정착기 소개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지금이라도 북한 인권 문제로도 눈을 돌려보고 다시 이런 증언에 귀 기울여보라고 대한민국 누구에게라도 권하고 싶다. 관심이 문제일 뿐, 자료도 많고 관련된 기사도 수시로 나온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아직도 지속된다. 특히 인권관련 국제기구들의 노력을 보면 한국이 정말로 미안할 정도다. 대한민국 정부야 말로 배 전도사 같은 이들의 증언과 고발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은 생명을 내걸고 북한 체제에서 벗어났고 지금도 위협을 무릅쓴 채 고발하고 있으나 정부는 관심이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북한과 대화도 좋고, 긴장완화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을 무조건 감싸고 껴안기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남쪽으로 쏟아낸 거친 언사들은 너무도 많고 심했다. 하나하나 되돌리기에도 거북할 정도다. 남북화해의 상징처럼 말했던 개성공단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백주 대낮에 어떻게 폭파됐나. 대한민국 공무원이 서해 해역에서 어떻게 피살되고 시신은 어떻게 됐던가. 오늘(9일) 발표된 김여정 담화라는 것도 그렇다. 6개월 만에 나온 담화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북한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정부 스스로에 뭐가 문제인지 진지하게 돌아보길 권한다. 일방적인 북한 감싸기가 어떤 성과라도 낸 게 있는지, 결과로 어떤 상황에 와 있는지,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지 부터다. 테러공격을 연상케 하는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나 의혹투성이로 남게 된 민간인 피격사건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가공할 북한 핵무기에 대한 침묵에 대한 얘기만도 아니다. 끊임없는 저자세에 해야 할 말도 않음으로써 남북관계를 오히려 망친 것은 아닌가.

그럼에도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우리도 확보 못한 코로나 백신을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북한으로부터 냉소나 받았다. 북한은 코로나 환자가 없다고 하는데 백신을 계속 주겠다는 것은 무슨 고집인가. 기업 경영권까지 위협하는 무서운 법을 만들면서 기업 인사들을 불러 모아 대북 경협을 채근하고 나설 정도였다. 기형적으로 편향된 대북 집착에서 벗어나 우리 국민들의 냉철한 시각을 다소라도 의식한다면 이렇게 이상한 모습으로 정부 혼자 북쪽으로 내달리지는 않을 것이다. 쉬운 일 하나, 배 전도사의 체험 강연을 통일부 직원들이 ‘교양 강좌’로 한번 들어보았으면 좋겠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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