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어리숙한 외골수? 연주 몸값 스스로 정하고, 배당조건 내건 '협상가'

입력 2020-12-10 17:30   수정 2021-03-08 00:02


"제안합니다. 대표님들과 제가 정한 오페라를 적어도 매년 한 곡씩 작곡할 겁니다. 대신 매년 2400플로린을 지급해 주시고, 오페라가 세 번째 연주될 땐 모든 수익이 저에게 지급되도록 해주십시오."

베토벤이 서른일곱이던 1807년 빈 왕립극장 대표들에게 보낸 편지다. 금액을 스스로 정하고, 흥행 수익 배당 조건까지 요구한다. 일종의 옵션계약이다. 베토벤은 자신의 음악에 자부심을 느끼고, 그 가치에 걸맞은 대가를 받아내려 했던 탁월한 협상가였다.

‘베토벤’ 하면 불행과 고통을 먼저 떠올린다. 어리숙하면서도 딱딱한 외골수 같은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로 음악을 알리고, 열정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갔다.

베토벤은 작품마다 번호를 매긴 최초의 음악가다. 6개월 또는 12개월 동안 자신을 후원한 귀족에게 독점 사용을 허락했다. 심지어 장르를 세분화해 가격을 매겼다. 오늘날 값으로 따지면 교향곡 300만원, 소나타 300만원, 협주곡 150만원 하는 식이다. “교향곡이 훨씬 길지만 소나타가 더 잘 팔리니 가격을 똑같이 받겠다”며 시장 상황을 감안한 제안을 했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협상에 능했지만 ‘자유로운 영혼’은 팔지 않았다.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자신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냉정하게 거절했다. 한 후작이 그런 베토벤을 보고 화를 내자 이렇게 말했다. “당신 같은 후작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소. 하지만 베토벤은 오직 나 하나뿐이오.

베토벤은 시대의 행운을 거머쥔 인물이기도 했다. 베토벤이 활동하던 시기는 프랑스 혁명(1789~1794)과 교집합을 갖는다. 구체제가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에 정당성을 불어넣고 싶었던 프랑스는 천재의 영감을 빌려야 했다. 귀족은 자신들의 고상함을 증명해줄 음악가를 경쟁적으로 후원했다. 궁정의 집사쯤으로 취급받았던 음악가의 위상이 치솟았던 배경이다. 하지만 굴종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에 얽힌 일화가 그의 강직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 베토벤은 민중 중심 국가를 꿈꿨다. 그 꿈을 나폴레옹이 실현해줄 것이라 믿고 교향곡 3번(영웅)을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1804년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르자 격분했다. “이제 그도 인간의 권리를 짓밟고 자기 야망만 탐닉하겠군”이라며 악보 표지에 써놓은 ‘보나파르트(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글자를 갈기갈기 찢었다.

베토벤은 천재이면서도 극한의 노력을 기울였다. 청력을 잃기 전에는 수없이 고친 흔적을 악상 스케치에 남겼다. 베를린 콘체르트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이반 피셔는 “모든 곡에 최선의 선택이 아닌 음이 없었다. 노력으로 절대적인 완벽함을 일궜다”고 했다. 청력을 잃었을 때는 입에 막대기를 물고 공명판에 대 진동으로 음을 짚었다.

베토벤은 사랑 앞에서도 열정적이었다. 브라운슈바이크 백작의 딸인 줄리에타를 위해 피아노 소나타 ‘월광’을 헌정하며 구애했고, 자신의 주치의 딸인 테레제와도 열렬히 사랑했다. 작품 ‘엘리제를 위하여’는 사실 ‘엘리제’가 아니라 ‘테레제’를 위해 만든 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나 더. 그의 사인이 매독, 또는 수은 중독이란 설은 현대 과학의 머리카락 분석을 통해 납중독이란 설로 대체되는 중이다. 애주가였던 베토벤은 와인을 몹시 즐겼는데, 당시 아세트산납을 감미료로 타 마시는 게 유행했다는 사료가 이를 뒷받침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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