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선전포고'에 전고체 배터리 전쟁 가열

입력 2020-12-11 17:07   수정 2021-03-11 00:02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판매 중인 순수 전기차는 지난 4월 중국에 출시한 C-HR(사진)이 유일하다. 신형 전기차를 앞다퉈 쏟아내며 숨 가쁘게 돌아가는 경쟁사들과 대조적이다. ‘친환경 바람’에 올라탄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고공행진하고 있다. 테슬라 시가총액은 도요타와 폭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 포드자동차, 피아트크라이슬러(FCA), PSA그룹 등 세계 6대 자동차 기업의 시총을 합한 것보다 많다. 내연기관 중심의 완성차 업체들이 “여기서 밀리면 죽는다”는 각오로 전기차 기업으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이유다.

그런데도 도요타는 고요하다. 순수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카와 수소전기차 판매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도요타는 순수 전기차를 포기한 걸까,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걸까.
신호탄 쏘아올린 도요타
지난 10일 도요타는 그에 대한 답을 내놨다.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공개한 것이다. 도요타는 10분 만에 완전히 충전해 500㎞를 달릴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내년에는 세계 자동차 업체 최초로 이 전고체 배터리를 장착한 시험차량을 공개할 계획이다. 2020년대 초반에는 전고체 배터리를 얹은 전기차를 양산한다는 목표다.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이목이 도요타에 쏠렸다. 전기차 업계의 판도를 뒤집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왜 그럴까.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전기차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다. 전지의 양극(+)과 음극(-) 사이를 리튬이온(Li)이 오가며 충전과 방전하는 원리다. 리튬이온이 음극으로 몰려가면 전기가 충전되고 양극으로 이동하면서 전류가 발생한다. 리튬이온이 오가는 도로 역할을 하는 전해질이 배터리의 충전 성능을 좌우한다.

문제는 현재 전기차에 올라가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전해질이 액체라는 점이다. 과도한 열이나 충격, 압력을 받으면 액체 전해질이 흘러내려 폭발할 수 있다. 반면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해 폭발 위험을 없앤다. 안전성 외에도 장점은 더 있다.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월등하게 길어지고 충전 시간도 30분~1시간에서 5~10분 정도로 확 줄어든다. 배터리 부피가 작아져 차량을 설계할 때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할 수도 있다.

국내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도요타가 겉보기엔 순수 전기차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찌감치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집중해 왔다”며 “당장 전기차를 팔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전고체 배터리를 내놓으면 전기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한 번에 뺏어올 수 있다는 계산”이라고 말했다. 도요타가 보유한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는 1000개가 넘는다. 전고체 배터리 개발로 가는 길목 곳곳을 도요타가 특허로 가로막고 있어 후발 주자들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명운 건 배터리 전쟁
전문가들은 도요타가 세계에서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가장 앞서 있다고 입을 모은다. 도요타의 선전포고로 전고체 배터리 개발 전쟁에 불이 붙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도요타가 계획한 일정대로 양산에 성공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세계 주요 완성차 업체와 화학업체들도 사활을 걸고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8일 미국 배터리 스타트업 퀀텀스케이프는 개발 중인 전고체 배터리가 15분 안에 80%를 충전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300마일(약 483㎞)이며 배터리 수명도 12년에 달한다고 했다. 퀀텀스케이프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인 독일 폭스바겐이 투자한 회사다. 폭스바겐은 2025년께 전기차 생산에 퀀텀스케이프의 전고체 배터리를 활용할 계획이다.

자그딥 싱 퀀텀스케이프 최고경영자(CEO)는 “테슬라는 다른 어떤 회사보다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회사”라며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성공하면 테슬라 역시 우리 제품을 사용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했다. 테슬라도 자체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 다만 전고체 배터리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가격을 절반 수준으로 낮추고 성능을 개선한 원통형 배터리를 3∼4년 내에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전고체 배터리를 얹은 차량을 2025년 시범생산하고 2030년 본격적으로 양산할 예정이다. 현대차는 자체적으로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지만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 기업과의 협업 가능성도 거론된다.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은 3월 1회 충전으로 주행거리 800㎞, 1000회 이상 충전할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 연구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독일 BMW는 미국 연료전지기업 솔리드파워와 손잡고 전고체 배터리 전기차를 2025∼2026년께 출시할 계획이다. 이 밖에 무라타와 히타치, 교세라, 도레이, 스미토모화학 등 일본 소재업체들과 중국 배터리업체 CATL도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필수가 된 전기차 전환
배터리 경쟁이 격화하는 이유는 전기차 전환에 가속도가 붙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올해 약 250만 대에서 연평균 29%씩 증가해 2030년 약 3100만 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전고체 배터리 시장 규모가 작년 329억달러 수준에서 2027년 874억달러 규모로 2.6배가량 성장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내연기관 차량 퇴출을 선언하는 국가도 늘고 있다. 영국 정부는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2030년 금지하고 2035년에는 하이브리드카 판매도 중단할 계획이다. 프랑스는 2040년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중국은 2035년, 노르웨이는 2025년, 일본 도쿄도는 2030년부터 각각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 중단을 추진하기로 했다.

배터리가 전기차 사업의 수익성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라는 점도 기업 간 경쟁을 치열하게 만들고 있다. 통상 배터리는 전기차 제조 원가의 30~4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시장을 장악하는 기업은 규모의 경제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비용 절감을 통한 막대한 수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기차로의 전환은 고성능 내연기관 차량을 판매하고 있는 완성차 업체들도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독일 스포츠카 브랜드인 포르셰는 2025년까지 판매 차종의 절반을 전기 구동 차량으로 채울 예정이다. 이탈리아 고성능 자동차 업체인 마세라티도 5년 이내에 모든 차종을 전기 구동 차량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 전고체 배터리

전지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대체한 차세대 배터리다. 액체 전해질에 비해 화재 및 폭발 위험성이 크게 낮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부피가 작지만 용량이 크고, 충전 시간이 짧아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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