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금지에 비용 전가, 수백억 과세까지…쏟아지는 反기업법

입력 2020-12-13 13:02   수정 2020-12-13 18:12



현대·기아자동차와 GM 등에 라디에이터 그릴과 자동차범퍼 부품을 납품하는 44년 전통의 플라스틱도금 1위업체 대륙금속은 지난달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울산지청으로부터 4억원의 과징금 부과 안내장을 받았다. 지난 1월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서 도금 작업은 하도급을 금지하고 있는 데, 이 회사 울산공장에서 부품 옮기는 일을 하던 직원들이 모두 하청업체 직원들이라는 이유에서다.

회사측은 이들의 업무가 도금 작업이 아니어서 법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반면 노동청은 도금작업장 인근에서 물건을 옮기는 공정도 광범위하게 도금작업에 속한다고 판단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산안법 개정안이 시행되자마자 국민신문고에 문의한 결과 공무원으로부터 플라스틱도금은 법상 도금으로 보기 어렵다는 답변도 듣고 안심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대륙금속은 위험한 도금 공정 대부분이 무인 자동화돼 있어, 일본 토요타와 독일 벤츠, 아우디 협력사들이 벤치마킹하러 방문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스마트공장으로 알려져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안전한 공장으로 꼽히는 데, 왜 우리나라 정부만 불법으로 규정해 4억원 과징금 처분을 내리는 지 이해가 안된다”고 억울해했다.

이처럼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처벌 범위가 광범위해지고 수위도 높아지면서 기업들이 신음하고 있다. 올들어 국회를 통과하는 법들에 대거 처벌 조항을 신설·강화해서다. 한 코스닥 상장사 대표는 “기업 규제가 완화되는 속도보다 더 많은 규제가 생겨나고 있다”며 “솔직히 코로나사태보다 이제는 각종 규제에 따른 경영 불확실성이 더 무섭다”고 하소연했다.

11일 한국경제신문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올들어 21대 국회에서 통과된 기업에 영향을 주는 법률 개정안은 물가안정법, 대기환경보전법, 기업활동 규제완화 특별조치법, 부정경쟁방지법 등 20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20여일 후 계도기간과 유예기간이 끝나는 주52시간 근무제와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위반업체 단속’ 역시 기업들엔 당장 ‘발등의 떨어진 불’이다. 과반을 훌쩍 넘은 174석을 확보한 여당(더불어민주당)이 언제든지 국회 통과를 밀어붙일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도 기업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보험료 인건비 늘고 中企 피해 가중
중견 제조업체 A사는 지난달 만기도래한 영업배상 기업보험을 갱신할때 보험료가 기존 15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두 배 올랐다. 동종업계 B사 역시 최근 보험료가 크게 올랐다. 지난 3월 보험엄감독규정이 개정돼 기업성보험에 대한 보험요율 규제를 강화하면서 자유로운 의무보험 설계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엔 각 산업별로 기업들이 꼭 가입해야하는 150여가지 의무 보험이 있다. 보통 기업들은 의무보험의 사고나 배상위험에 대한 보장 한도보다 더 큰 보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험료를 더 내고, 의무보험 내용을 기초로 한단계 강화시킨 보험상품을 가입해왔다. 하지만 지난 3월 규정이 바뀌면서 이렇게 의무보험을 기초로한 추가 상품 설계가 불가능해졌다. 기업들이 별도로 보장을 받고 싶으면 의무보험과는 별도로 또 다른 보험상품을 가입해야하는 것이다. 이번 규정 개정은 각 부처별로 산재된 의무보험을 작년부터 행정안전부가 통합 관리하게 된 것을 발단이 됐다는 분석이다. B사 대표는 “왜 한 개의 보험으로 보장되던 것을 추가로 가입해야하나”라며 “현장 기업의 목소리를 듣지않고 전형적인 탁상행정으로 규정을 만들다보니 기업들이 부담해야할 보험료만 비싸졌다”고 한탄했다.

기업 입장에서 비용 부담이 늘게 되는 법으로는 한정애 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기업활동 규제완화 특별조치법 개정안’이 꼽힌다. 기업이 안전관리자와 보건관리자에 대해선 외부에 위탁하지말고 전문자격을 갖춘 자를 직접 채용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레미콘기사 등 특수고용직(특고)의 고용보험 적용을 골자로한 고용보험법 개정안 역시 기업에 비용 부담을 전가시킬 전망이다.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최근 레미콘 기사들의 단체화로 운임료 등 비용이 급등했는데, 보험료 부담까지 늘면 문을 닫는 한계기업이 속출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은 계속 근로기간이 1개월 이상인 근로자에게 퇴직금 지급을 의무화하는 법안이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최근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이미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지불여력은 한계에 직면했다”며 “이 법안이 시행되면 잦은 이직, 구인난으로 이어져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징벌적 배상제 도입에 수조원대 과징금도
기업 처벌을 대폭 강화한 법안도 많다. 내년 4월 시행되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 개정안은 아이디어 탈취행위에 따른 손해에 대해 3배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임형주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배상금이 증가함에 따라 아이디어 탈취를 주장하는 소송이 늘어날 것이므로 기업 입장에서는 소송 방어의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아이디어탈취라는 행위 개념의 모호성 때문에 더욱 큰 리스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월부터 시행된 디자인보호법과 상표법 개정안 역시 권리 침해에 따른 배상액을 손해 금액의 최대 3배까지 대폭 강화해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내년 4월 시행되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촉진법 개정안은 기술유용, 납품대금 미지급 등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했다. 유사 규제인 하도급법(하도급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에는 없던 징역 조항(최대 징역 2년)이 들어왔고, 처벌에 대한 시효가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40년전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될 수 있는 법안”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9일 통과돼 내년 5월 시행되는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은 대기오염에 따른 과징금 상한을 기존 2억원에서 매출액의 5%까지 대폭 올리고 조업정지처분 요건도 풀었다. 연매출이 각각 60조원과 20조원 규모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경우 고로에서 사고가 한번 발생했다간 수조원의 과징금을 내야하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수출금지에 연 500억 과세까지…산업 전체 위기
정부 규제로 특정 기업군 전체가 고사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아직 통과되진 않았지만 여당 의원들이 발의된 법안 가운데 ‘해외석탄발전투자금지 4법’(한국전력공사법·수출입은행법·산업은행법·무역보험법 개정안)이나 ‘시멘트세’과세법(지방세법 개정안)은 통과될 경우 해당 업종에 치명타를 가하는 대표적인 반(反)기업법으로 꼽힌다.

해외석탄발전투자금지 4법은 지구 환경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국내 발전업계의 수출을 원천 봉쇄하는 법안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석탄발전 기술을 보유한 국내 발전업계의 수출을 막으면 기술력이 낮은 중국 업체가 빈자리를 메워 결과적으로 글로벌 대기환경을 더 나빠지게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시멘트업계에 톤당 1000원씩, 연간 500억원 가량의 세금을 추가로 부과시키는 시멘트세 과세법안의 경우 일자리 축소 부담때문에 업계 노동조합 전체가 반대하는 법안이다. 또 ‘이중과세’지적도 나오고 있다. 시멘트업계에선 이미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 채광시 세금을 납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관법 시행 코앞…“수천만원 공사비 어떻게 감당하나”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의 경우 중소기업계는 코로나 사태라는 특수 상황임을 감안해 정부에 법 위반 단속을 2021년까지 유예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환경부는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법 위반 단속에 들어가기로 했다. 화관법을 지키려면 방지벽·경보장치 설치 등 336개에 달하는 시설 기준을 맞춰야하고, 이에 필요한 공사비만 평균 3700만원(중기중앙회 설문조사 결과)인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부가 일부 기준을 낮추고 경영개선명령을 내린 후 1년 가량 시설을 교체할 시간을 줄 것으로 보이지만, 수천만원의 공사비를 감당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은 대거 범법자로 내몰릴 것으로 보인다. 화관법을 적용받는 기업은 도금, 염료, 정밀화학 등 1만4000여 곳에 달한다.

국회 통과돼 내년 4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항공안전법 일부개정안(김주영 민주당 의원 등 발의)은 항공운송사업자, 항공기사용사업자 등이 운항관리사에 대한 피로 관리를 의무화한 법안이다. 항공업계에선 코로나19로 인한 산업 침체로 항공사들이 구조조정에 나서는 마당에 적절치 못한 입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기업계에 가장 큰 타격을 주는 법안으로 주52시간제가 꼽힌다.



중소기업계는 ‘인건비 폭탄’, ‘구인난’, ‘매출 감소’ 등을 우려해 1년 가량 유예 연장을 요청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근로자 50~299인 기업에 주 52시간제를 적용키로 했다.범여권에서 밀어붙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인명사고 발생시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한 법안이다.

하지만 산업안전 문제를 근로자가 아닌 사업주 처벌 및 사후처벌 위주로 접근하는 방식은 정책 효과가 낮을 뿐만 아니라 기업인들을 범법자로 내몰아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대표이사나 오너가 처벌을 받으면 당장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는 중소기업계엔 더 치명적인 규제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안대규/민경진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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